[사설]北이 진실로 대화를 원한다면

  • 입력 2001년 9월 3일 18시 39분


북측이 2일 오후 평양방송을 통해 남북대화 재개를 제의한 데 이어 어제 다시 판문점을 통해 같은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보내왔다. 지난 3월 이래 북측이 일방적으로 중단해온 남북대화가 5개월여 만에 다시 이어질 계기가 마련됐다는 의미가 있다.

통일부측 설명대로라면 북측은 3일부터 열리고 있는 북-중(北-中)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카드로, 나아가 오는 10월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남북대화를 어느 정도 복원해 놓을 필요성에서 이번 제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북측으로서는 북-미(北-美) 대화 재개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제의에는 북측의 진의와 관련해 몇 가지 석연찮은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에 대한 국회 해임안 표결로 정국이 시끄러운 이때에, 파문의 당사자인 임 장관 앞으로 그런 제안을 보내왔다는 점이 그렇다. 이건 한나라당과 자민련측에서 ‘임 장관 구출작전’이라고 의심하기에 딱 알맞은 시점과 형식이 아닐 수 없다.

북측이 이처럼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듯한 방식으로 대화 제의를 해오는 것은 북측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측 일각에서 오히려 북측의 진의에 대한 의구심만을 키울 뿐이고, 결국 대북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안의 주체가 작년처럼 장관급회담 수석대표나 내각 명의가 아니라 대남(對南) 전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라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북측은 90년대까지는 주로 조평통 명의로 대화를 제의해왔다고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북측이 기존의 장관급회담 틀을 활용해 대화 의지를 천명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일단 대화를 제의한 만큼 북측은 향후 일정 및 의제 협상에서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남북간에는 경의선 복원, 이산가족 문제, 금강산 육로관광, 경협 4대 합의서 교환 등 당장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북측이 이런 일들을 도외시한 채 어떤 다른 의도로 남북대화를 활용하려 한다면 그 부담은 결국 북측에 돌아갈 것이다.

방송을 통한 북측의 제안이 있자마자 통일부가 즉각 ‘환영 논평’을 내놓은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국민은 정부가 오로지 북측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다시 한번 받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임 장관 해임안의 국회 통과를 대북 자세를 의연하게 가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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