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경제 탓만 할 것인가

  • 입력 2001년 9월 2일 19시 02분


세계경제가 심상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세계경기가 중대한 불황에 처할 가능성’을 예고한 것은 가장 보수적이고 권위있는 기관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걱정을 키워준다. 특히 미국의 2·4분기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하향수정된 0.2%에 그친 것은 세계경제가 맞을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예사롭지 않다.

그 여파로 유럽과 아시아권의 경제가 동반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불황의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7월의 산업생산이 작년 같은 달보다 5%나 감소해 98년 외환위기 이후 2년9개월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고 생산설비 가동률이 평균 71%로 내려앉았다는 통계청의 발표는 우리 경제에 경기불황이 이미 깊숙이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매달 발표되는 경제통계가 계속 최악의 기록을 경신하며 악화를 거듭할지도 모른다.

이 같은 상황은 ‘다음 분기에는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정부의 근거 없는 낙관론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보여준다. 아닌 게 아니라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 97년과 지금은 한국경제의 기본구조가 다르지만 제2의 IMF를 당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며 비관론 쪽으로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강봉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도 “1차 오일쇼크 이후 처음 겪는 지구촌 성격의 불황으로 IMF 때보다 더 어려워질 확률이 있다”고 말해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경제정책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처럼 위기에 대한 경고만 말하고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더욱 불안해진다. 세계경제가 어렵고 그 여파가 얼마나 클지는 지금쯤이면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상태다.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외부 탓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악영향을 최소화할 것인지의 대안을 내놓는 것이다.

정책당국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대책(컨틴전시 프로그램)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실질적 구조조정을 촉진하되 그 과정에서 기업마인드를 북돋워 주는 일에 소홀해서도 안된다. 80, 90년대 초반 세계적인 경제불황 때 어김없이 큰 타격을 받고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우리의 저력을 다시 한번 발휘할 수 있도록 국민을 독려하는 정책을 내놓는 것은 정부의 임무다. 국제적 환경호전의 덕이 적지 않았던 환란극복을 정책의 가장 큰 치적이라고 자랑해 온 이 정권에 진짜 능력검증의 시기가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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