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승희/문학은 시들고 ‘상품’만 판치네

  • 입력 2001년 8월 29일 18시 32분


한류(韓流) 대중문화가 인접 아시아 국가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나라 중산층 젊은이들 사이에선 패션은 물론 한국 여배우처럼 얼굴 성형을 하는 것이 인기라고 한다. 국제 무대에서 언제나 문화의 수용자였을 뿐 문화의 발신자였던 적이 없는 빈한한 ‘문화의 나라’ 한국은 이제 이웃 나라의 한류 열풍에 고무돼 분수에도 맞지 않는 자아도취에 빠져 가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기에 정부까지 한류 열풍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돈 돼야 지원하는 문화정책▼

외국 유행가에 빠져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지만 존 레넌이나 밥 딜런을 좋아했던 것이 어찌 그 나라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에 부응해서였을까. 내가 비틀스의 노래에 몹시 비교(秘敎)적으로 빠져들었던 것이 영국의 대중문화정책과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단지 존 레넌의 ‘이매진’이나 비틀스의 ‘렛 잇 비’가 나의 인생철학에 다가오는 것이 있었고 복잡한 이 세상에 처참한 구속을 받고 살아가는 내 영혼을 울리는 뭔가가 있었기에 그들의 음악을 즐겼던 것뿐이다.

시민들이 편하게 책을 빌리고 읽을 수 있는 동네 도서관 하나 변변히 없는 나라에서 인접 국가에다 한류를 적극 성원할 수 있는 사무실까지 차린다는 것은 어쩌면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민족주의적 자아도취에 갑자기 빠지게 돼 심리적 균형과 판단력을 상실한 것인가. 엔터테인먼트가 문화의 전부인가, 수익성을 내는 사업이라야 비로소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오고 있는데 출판을 하는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문학 출판은 거의 죽음 직전에 처해 있다고 한다. 사이버 문화, 화려한 대중문화 공연의 확산, 관광 문화재의 육성, 시장경제 가치만 신봉하는 황금만능주의 마인드, 레저산업의 확산 등 ‘문학의 적’은 셀 수 없이 많고 문학 애호가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문학의 적이 되어버린 막강한 문화정책과 시장경제의 시대에 그래도 글을 쓰겠다고 나서는 ‘희귀동물’들이 아직 남아 있지만 앞으로 문학과 출판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를 속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 자극적인 문화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더 자극적인 인터넷 프로그램들이 공짜로 눈앞의 화면에 둥둥 떠다니는 마당에 문학 책을 읽는다는 것이 뭐 그리 전율적이고도 실존적인 필요성을 제공할 것인가.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책은 여전히 팔리고 있고 아직도 문학 독자층은 면면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구매력 있는 독자들의 존재가 좋은 문학의 든든한 후원자요, 애호가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팔려 나가는 문학 책은 거개가 베스트셀러용 연애소설일 뿐 사색이나 사상, 시대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을 담은 진지한 작품집은 고작 초판을 넘기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니 과연 독자들의 존재가 문학 생산을 후원하는 고마운 존재인지, 아니면 진정한 문학을 고사시키고 상품으로서의 문학만 번성케 하는 해로운 존재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독자 입맛에 맞추기 위해 문학의 소재가 달라지고 패션화하고, 날림으로 제작된 순정만화 수준을 넘지 못하는 연애소설만 팔린다 싶으니 그 쪽 취향의 작품들만 양산된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의 취향이 곧바로 문학의 소재와 형식, 어법, 상상력에 말할 수 없이 막강한 지배력을 휘두르게 된 실정이다. 독자는 점점 더 문학의 옹호자, 애호자라기보다 문학의 질을 하향 평준화하는 문학의 적으로 변해 가는 것 같다.

▼독자들 진지한 작품은 외면▼

이런 실정에 마을마다 도서관 하나라도 더 짓고 그 안에 서점에서 잘 팔리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책들을 비치해 출판사도 살리고 독서를 통해 다음 세대의 정신 능력을 기르는 데도 역점을 둬야 할 정부까지 한류 문화 관광 산업에 뛰어든다고 움직이는 것을 보니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버림받은 느낌마저 든다.

선거 캠페인 구호처럼 ‘될 사람을 밀어주자’인가? ‘될 사람을 밀어주는 것’은 기업 논리이거나 돈의 논리일 것이다. 이미 뜨고 있는 한류 열풍은 확장과 번성을 스스로 지속하거나 대중문화 자체의 속성대로 어느 날 문득 더 이상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정부는 상업적 논리를 뜨겁게 따르기보다는 그 이상의 무엇을 수립할 수 있는 차가운 지적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 승 희(시인·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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