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맛있는 수다]냉면계의 지존, 평양냉면

  • 입력 2001년 8월 20일 13시 49분


저는 냉면을 참말로 좋아합니다.

냉면을 처음 먹어본 게 언제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냉면 한 젓가락을 집어든 그 순간부터 냉면을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전생에 냉면집 주모였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여름이면 거의 이틀에 한번 정도는 냉면을 먹는 것 같아요. 날씨가 너무 더우면 정말 머리 속에 ‘냉면’이란 두 글자밖에 안 남거든요. “아…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었으면…헥헥…”이런 식이죠.

그런데 냉면 제대로 하는 집, 그렇게 흔하지 않지요?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간단한 요리인데 맛은 어찌나 제각각인지…면발이 너무 질겨서 도무지 끊어먹을 수가 없지 않나, 겨자와 식초 없이는 국물 맛이 영 밍밍하질 않나, 맵기만 무섭게 맵질 않나! 김혜자 아줌마처럼 우아하게 “그래, 이 맛이야” 할 만한 냉면은 정말 찾기가 어렵습니다.

얼마 전 친구와 북한냉면집을 갔습니다. 뭐 그런 집 있잖아요? 북한 정통 냉면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는 약간 촌스럽고 전투적인 스타일의 음식점. 일가친척 중에 실향민이 안계신 관계로 북한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냉면이 예술!”이란 친구의 꼬드김에 가게 된 거죠. 분위기는 우리나라 냉면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놀라운 건 그 가격! 우리나라 냉면보다도 500원에서 1000원 정도 더 비싸게 팔더군요. 우와, 북쪽 사람들이 생활력이 강하다고 하더니만…

하지만 그 곳에서 전 요 근래 먹어본 냉면 중에서 제일로 맛있는 냉면을 맛보았답니다. 평양식 물냉면이란 건데요. 면이 메밀로 만들어진 거더라구요.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먹는 고무줄처럼 질긴 면발이 아니라 아주 고소하고 부드러운 메밀 면발이었지요. 거기다 깔끔한 육수까지. 곁들여 나온 건 삶은 고기 한 쪽과 무김치, 오이가 전부였지만 정말 완벽한 조화! 국물까지 홀라당 다 마셔버렸더니 배가 빵빵하더라구요.

그 맛있는 평양냉면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방법은 없느냐…물론 있죠. 제가 좋아하는 반조리된 냉면 상품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잘만 고르면 비슷한 냉면을 만들 수 있거든요. 제일 중요한 건 면의 선택과 조리법이죠. 쫄깃 쫄깃한 함흥냉면 면발 대신 메밀국수의 면발을 골라서 풀어지지않게 삶아주는 거죠. 거기다가 물냉면 육수 소스와 겨자를 잘 섞어 국물을 만들면 ok! 오이와 무채를 곁들이면 한 80% 정도는 비슷한 것 같아요. 100%를 추구하신다면 산 넘고 물 건널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네요. 나름대로 북한에서 공수해오는 재료들을 쓴다고 하더라구요.

하루 세끼를 준비해야 하는 괴로운 주말엔 한 끼 정도 냉면으로 해결하면 좋아요. 냉면을 간식으로 생각하는 몰지각한 남편을 두셨다면 안하니만 못한 시도겠지만요. (냉면 삶으랴, 설거지하랴, 다시 밥 먹이랴…꽥!) 질긴 냉면계에 새바람을 불고 온 부드러운 평양냉면. 여름이 다 지난 다음에 후회말고 지금 만들어 보세요.

***피양 스타일 냉면***

재 료 : 메밀국수, 물냉면 소스, 겨자, 식초, 오이, 무, 삶은 계란

만들기 : 1. 메밀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군다

2. 찬물에 물냉면 소스와 겨자, 식초를 넣고 잘 섞은 후 얼음을 띄워 간을 맞춘다

3. 오이는 깨끗이 씻어 채썬다

4. 무도 채썰어 소금, 식초에 살짝 절인다

5. 그릇에 메물면과 오이, 무, 삶은 계란 반쪽을 얹은 후 육수를 부어준다

ps. 오늘로 ‘맛있는 요리, 맛있는 수다’를 마치게 됐습니다. 그동안 어설픈 저의 요리 얘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요리솜씨가 좀 나아졌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게으름뱅이 아내를 둔 죄로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하고 사는 우리 신랑의 섭생에 더 신경을 쓸 것을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행복하세요!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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