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진홍/너희가 패러디를 아느냐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26분


‘컴백홈’이 ‘컴배콤’을 법정으로 불렀다. 서태지가 자신의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해 ‘컴배콤’을 발표한 ‘음치가수’ 이재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패러디 논란’이 문화의 채반에서 걸러지기도 전에 법의 천칭 위에 얹혀진 셈이다.

본래 패러디란 원작에서 따온 내용과 표현양식이 반전(反轉)과 전복(顚覆)을 일으키며 전혀 새로운 의미구조를 창출해 내는 일종의 콘텐츠 변용행위를 말한다. 물론 그것은 모방이나 표절과는 엄연히 구분되고 또 하나의 창작으로까지 인정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 대중문화는 ‘패러디의 시대’라고 할 만큼 광고,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심지어 출판에서조차 패러디가 성행하고 있다. 모 제약회사의 바퀴벌레 유인제 광고가 영화 ‘빠삐용’의 스티브 매퀸이 감방 안에서 바퀴벌레를 잡아먹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은 이미 고전에 속한다. 최근에는 대박을 터뜨린 영화 ‘친구’를 부산 사투리가 아닌 충청도 사투리로 바꾸어 패러디한 코믹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다.

댄스그룹 쿨의 뮤직비디오 ‘점포 맘보’는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를 패러디해 관심을 끌었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패러디한 ‘배칠수의 음악텐트’는 인터넷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다소 보수적인 출판계에서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패러디한 ‘누가 내 치즈를 잘랐을까’ ‘치즈 내 것 만들기’ 등의 출판물이 줄을 잇고 있다. 더구나 ‘넘버3’ ‘간첩 리철진’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친구’ ‘동감’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 히트작만 패러디해 영화를 만들겠다는 제작사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패러디는 성행하지만 정작 우리의 패러디 수준은 ‘못말리는 람보’나 ‘총알탄 사나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패러디와 모방이 구분이 안되고 패러디와 표절이 혼동되며 패러디를 코미디와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이에 반해 얼마 전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은 ‘택시 드라이버’에서 ‘매트릭스’에 이르는 허다한 극영화 속 장면들을 패러디했지만 결코 어설픈 모방이나 표절 혹은 질 낮은 모자이크 작품이라고 평가받지 않는다. 오히려 ‘슈렉’은 칸영화제 사상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입한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물론 진정한 패러디는 원작의 유명세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패러디의 본령은 뒤집어내는 힘이다. 즉 전복력이다. 마거릿 미첼의 유명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패러디한 ‘바람은 이미 사라졌다’는 원작의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의 의붓동생이자 흑인인 시나라의 시각에서 원작을 재구성해 원작소설에 내재한 백인우월주의를 전복시켰다는 점에서 표절이 아닌 패러디소설로 인정받았다.

패러디는 단순히 웃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패러디는 기왕의 권위주의화된 문화권력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새 지평을 열어보려는 전복의 몸부림을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전복의 몸부림이 거세된 패러디는 단지 질 낮은 코미디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재수의 ‘컴배콤’은 서태지의 ‘컴백홈’을 제대로 패러디한 것일까. 한때 서태지는 기성권위에 도전한 신세대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문화적으로 권력화해 간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문화의 권력화는 곧 문화의 화석화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재수의 ‘컴배콤’은 서태지를 변기 위에 앉혀 놓으면서라도 권력화하는 그를 뒤집어 보려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컴배콤’은 실제로 집나간 아이들을 불러들였던 ‘컴백홈’의 진정성에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컴배콤’은 문화권력의 화석화를 경고하고 이를 뒤집으려는 의도는 드러냈지만 정작 전복을 통한 새로운 의미 창출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재수의 ‘컴배콤’이 차라리 코미디에 가까운 설익은 패러디였을지라도 그것의 존재 여부를 문화의 시장에 내맡기기보다는 곧장 법정으로 끌고 간 서태지의 대응은 결코 ‘컴백홈’의 그 서태지가 아닌 듯 싶어 씁쓸할 따름이다. 이래저래 우리 대중문화의 두께가 제대로 된 패러디의 묘미를 맛보기에는 아직도 너무 얇은 듯 싶다.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atombit@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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