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페미니즘 詩 평론집 '남자들은 모른다'

  • 입력 2001년 8월 13일 18시 24분


▼'남자들은 모른다' 김승희 저/마음산책▼

‘여성 시인의 삶이란 처음부터 비극을 품고 있는 것일까.’

김승희 서강대 교수(시인)가 국내외 여성시인들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시를 골라 싣고 이에 대해 평론한 ‘남자들은 모른다’(마음산책)를 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여성 시인들이 몸으로 보여준 비극적인 운명이다. 이 책에 소개된 30명의 여성시인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다섯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석영희씨의 죽음은 그 자체가 시처럼 울림을 남긴다. 그는 93년1월1일 스스로 집에 불을 질러 이승을 떠났다. 오스트리아의 천재적 여성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처럼 불꽃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당시 나이 36세.

93년 데뷔한 석씨의 작품 ‘심판’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것임을 예고한 듯하다. 무딘 칼로 시인의 목을 반쯤 썰다가 중단한 사형집행인을 노래하고 있다. 김 교수는 “유예된 죽음을 뛰어넘어 스스로 죽음 집행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대표작 ‘백합꽃’을 남기고 떠난 이연주씨의 죽음 역시 범상치 않다. 석씨가 죽고 이듬해에 스스로 목을 매어 문단에 ‘뜨거운 사건’이 되기도 했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만 여성시인들이 자살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63년 자살했고, 몇 해뒤 실비아 플라스의 ‘정신적 자매’인 고백파 시인 앤 섹스턴도 목숨을 끊었다.

김 교수는 이 두 외국 시인도 이 책으로 불러들였다. 기구한 인생 못지 않게 우리나라 현대 여성시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적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아빠’를 남긴 실비아 플라스의 극적인 인생은 여성시인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전말은 ‘실비아 플라스의 영혼을 찾아서’(박종성 지음·동인·1999년)에서 볼 수 있다. 로댕의 그림자에 묻혀버린 카미유 클로델처럼 그는 영국의 계관시인인 남편 테드 휴즈의 그늘에서 시적 재능을 피우지 못했다. 게다가 결혼 6년만에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신경쇠약에 걸렸다. 두 아이를 남기고 결국 세 번째 자살 시도 끝에 3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실비아가 잠시 미국에 살았을 때 만나 우정을 나눴던 앤 섹스턴은 28세 때 신내림처럼 시창작에 빠져든 작가. 이때 함께 얻었던 정신쇠약을 치료하면서 쓴 ‘당신 없이 18일’이란 시로 퓰리처상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46세에 그녀는 자아 분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수면제 과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책 머리말에서 김 교수는 이들의 시를 뽑고 나서 한숨을 지었다고 말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성시인의 시에는 왜 이렇게 광기와 절명의 충동이 많은 것일까”라고. 김교수의 한숨에는 사고사로 유명을 달리한 고정희씨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몇몇 여성시인의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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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연주 시인은 생전에 결혼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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