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32인의 언론성명 귀담아 들어라

  • 입력 2001년 8월 3일 18시 12분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우리 사회는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정치권 언론계 지식인 국민들 사이에 분열과 대립이 계속되면서 나라 전체가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엊그제 대학총장 종교인 시민단체대표 등 각계 원로 32명이 내놓은 ‘최근 언론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이 같은 상황을 걱정하면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귀담아 들을 만하다. 성명은 정부에 언론탄압의 의혹을 남기지 말도록 촉구하고, 언론에 대해서도 반성과 스스로의 개혁을 촉구했다.

우리는 우선 언론사들이 자율적 개혁을 소홀히 해왔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우리는 이를 반성하고 고칠 것은 고쳐나가는 등 스스로 언론발전을 위한 개혁작업에 더 한층 충실할 것이다. 언론이라고 해서 성역에 안주할 수 없고 어떤 특혜나 특권을 기대해서도 안된다.

정부는 현 상황에서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 길들이기라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성과 재점검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 사회 전체가 양극화로 치달았다고 지적한 부분을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23개 언론사가 전부 탈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6개 언론사만 고발한 것은 공정성이 크게 훼손된 처사라는 성명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고발되지 않은 신문사나 방송사들은 마치 면죄부나 받은 것처럼 특정 언론사를 집중공격하고 있고 여기에 일부 시민단체들이 가세해 정부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 이번 세무조사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에는 생산적인 토론의 장이 파괴되고 이념대립의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성명의 지적처럼 진보와 보수는 서로를 매도하고, 지식인은 은연중 어느 한편에 서도록 강요당하고, 자신과 다른 의사표시를 한 사람에게는 전화폭력이 쇄도하고 있다.

결국은 국정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모두가 공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을 밀어붙이기만 하다 보니 이런 상황까지 오고 만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언론문제를 둘러싸고 더 이상 표류해서는 안된다. 이 같은 모습이 오래 계속될수록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모두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현 정권이 치유할 수 없는 국가적 상처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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