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락교수의 이야기경제학-10]'일본위기'는 잘못된 진단

  • 입력 2001년 7월 29일 18시 47분


일본 토요타자동차는 98년 직원 6만9000명으로 320만대의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그 해 미국 GM은 74만명으로 390만대를 만들었다. 얼핏 토요타의 생산성이 GM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런가.

GM은 자동차 부품의 50%를 자체 생산하므로 직원이 많아야 하지만 토요타는 20%만 자체 생산하므로 직원이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다. 토요타는 모회사와 협력 자회사들이 하나의 생산조직체처럼 돼 있는데 이런 기업그룹을 ‘수직 게이레쓰(系列)’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남녀노소가 법 앞에 완전 평등한 것처럼 대-중-소-영세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 기업의 잣대로 보면 일본의 게이레쓰는 해체 대상이다. 그러나 일본 기업의 시각으로 보면 토요타는 미국 ‘포천’지가 밝히듯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동차 회사다.

▼ 글 싣는 순서▼
1. 서양은 언제부터 우리를 앞섰나
2. '국부론'의 처방 따르면 잘 사나
3. 규칙에 살고 반칙에 죽는다
4. 자유경제는 윈·윈게임
5.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6. "검의 고수엔 칼로 덤비지 말라"
7. 지능 지수 높은 동아시아인
8. 세계 제일 '경제코치'포진
9. 미래주역은 '기업가적 두뇌'
10. '일본 위기'는 잘못된 진단
11. 한강 개발가치 무궁무진
12. 작지만 큰나라 '코리아'
13. 세계 지배상품 만들자
14. 세계수준 대기업 바로알자
15. 글로벌시대의 교육
16. 지식산업시대의 국토
17. 지식기반 산업 준비

이상은 일본 NHK방송국이 다이와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펴낸 ‘영어로 말하는 일본경제 제2판’에 실린 내용이다.

얼마 전 ‘일본은 제일’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에즈라 보겔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쓴 ‘일본은 아직도 제일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밝힌다. ‘일본은 선진국 중 저축률 대외자산 소득분배 면에서 볼 때 가장 잘하고 있다. 세계 최장수 국가이며 기초교육, 범죄율, 세계 경제 정보 수집 면에서 볼 때도 가장 모범적인 나라 중 하나다. 많은 외국인들이 일본은 위기상태에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국제경쟁력과 전략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는 일본 경제는 토요타 소니 혼다 등 경쟁력이 아주 강한 부분과 유통 도소매 서비스업 등 아주 약한 부분이 같이 존재하므로 두 개의 경제로 나눠 보아야 한다고 했다. 현재의 문제는 주로 후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일본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의 독특한 전략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총리도 ‘21세기 일본의 전략’에서 비슷한 지적을 했다. 일본의 세계적인 경영전문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올해 펴낸 ‘보이지 않는 대륙’에서 ‘일본은 거품경제가 터진 이후 비전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문제점만 계속 부각시키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새 시대의 일본 경제를 다음의 네 가지 경제로 나눠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첫째는 ‘국내의 보이는 경제’다. 이것은 거품경제가 터진 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둘째는 ‘글로벌 경제’다. 일본은 세계 30대 기업 중 12개(미국은 10개)를 갖고 있듯이 글로벌 경쟁력이 강한 기업이 많다. 일본은 세계 제일의 채권국이고 대외자산 보유국이다. 셋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경제’인데 일본은 이 점에서 상당히 잘하고 있다. 넷째는 그야말로 ‘부풀어 오른 금융경제’다. 미국의 많은 하이테크 회사의 주식 시가 총액은 적게는 이윤의 수십배, 많게는 수백배 부풀어 올라 있다. 미국 증시는 90년대에만 몇 배나 부풀어올랐으므로 기업들은 풍성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돈 놓고 돈 먹기 식으로 하루에 거래되는 돈의 양이 1조8000억달러나 된다. 이 중에는 세계 제일의 무역흑자 대국인 일본 돈도 상당히 많다.

미국의 적잖은 기업 평가기관들은 일본의 회사와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형편없이 낮게 평가해 일본이 마치 위기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는 주로 눈에 보이는 국내경제를 대상으로 하고, 일본 시스템이 미국과 다른 사실을 간과하며, 또한 일본경제는 글로벌 지식기반시대 여러 차원에서 성장을 달리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국내의 보이는 경제만을 대상으로 일본경제가 심각한 위기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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