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호표/'원조교제' 감상법

  • 입력 2001년 7월 29일 18시 47분


서울의 한 구석에서는 음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최근 철부지 젊음과 노회한 권력의 간통 현실을 보도한 바 있다. 우리의 혼탁한 정치 사회적 환경을 염두에 두면서 일부 계층에 성행하는 청소년 성매매(원조교제)를 짚어보자.

청소년 성매매란 어린 여성이 몸을 내놓고 주로 중년 남성이 그 상품을 사는 관계다. 사랑에 바탕하지 않으므로 떠나면 그만이고 다각관계도 가능하다.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어린 여자를 찾는 남자들은 열등감이 심하다. 대등하거나 당당한 사람들을 무서워한다. 1대1로는 성적으로 만족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하는 풋내기를 찾는다. 상대가 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자신이 돈과 사회적 연륜을 갖춘 ‘남자’로 평가받는다는 생각에 비로소 자신감이 생긴다. 몸에서 가장 민감한 섹스기관은 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만만한 상대를 찾아 지배 심리와 해방욕구를 충족한다. 결국 남자쪽 핵심 심리는 섹스에 대한 두려움이며 동등한 상대에 대한 공포가 본질이다.

미숙한 10대 소녀는 열등감을 물질로 채우려 한다. 자신의 짧은 연륜과 구조적 결함은 무시한 채 소유평등의 강박관념에 빠져 물질을 얻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즉각 만족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경계선 인격, 충동조절이 안 되는 반사회적 인격,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히스테리를 지니고 있다. 자기가 못나서 가족과 주변의 사랑을 받지 못함에도 엉뚱한 행동으로 복수하려는 파괴적 심리도 있다.

커뮤니케이션학자들은 채팅, 전화방, 휴대전화 등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전으로 ‘브로커’나 유곽을 이용하지 않고 익명으로 매매춘 계약을 할 수 있게 된 점을 청소년 성매매 성행의 인프라로 꼽는다. 직거래 덕분에 ‘몸을 판다〓창녀’라는 생각이 흐려지고 사회적 터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름의 근거를 찾았다는 분석이다. 당사자들이 직접 합의하면 사랑행위인지 매매춘인지가 모호해진다는 점을 악용한다. 이들은 ‘내 인간성의 기반은 몸이 아니라 정신 또는 마음이다’는 이원론에 빠져 ‘사랑에 관한 한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일원론이 주류임을 외면하고 오히려 주류를 공격한다.

일본문화평론가들은 일본의 ‘원조교제’에는 지속성이 있으며 ‘원조’도 체계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차를 함께 마시거나 놀기만 해도 일정액을 주며 ‘연봉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일회성 중심에 구체적 성적 유희에 대한 화대를 주는 단순 매매춘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부도덕의 관점에서는 같지만 일본의 ‘원조교제’는 한국에서 ‘청소년 성매매’가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언뜻 청소년 성매매는 자생적인 수요와 공급이 만들어 내는 경제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대안적 성관계’와 ‘대안적 직업’을 양산해 ‘사랑과 땀의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이들은 가정과 정당한 직업을 지향하는 ‘주류’의 가치관과 사회의 뿌리를 눈앞의 이익을 위해 부정한다는 점에서 소수 일탈세력이다. 불순한 마이너리티끼리 맺는 검은 연대의 본질인 것이다. 불륜으로 가정이 ‘개혁’될까. 청소년 성매매는 일본의 ‘원조교제’와 달리 지속적 관계조차 어려운 ‘냄비불륜’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권력과 설익은 마이너리티 집단들의 ‘관계’가 궁금하다.

홍호표<부국장대우 이슈부장>hp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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