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열/日 '신사참배' 악용말라

  • 입력 2001년 7월 29일 18시 47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일본 국민과 이웃나라에 우려를 확산시키고 있는 가운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가 국제적인 갈등요소로 떠올랐다. 고이즈미 총리는 ‘패전 기념일’인 8월 15일 A급 전범들이 합사(合祀)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겠다고 밝혀 파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교토에 세운 초혼사(招魂社)를 이듬해 도쿄 천도와 함께 옮겨, 10년 후인 1879년 이름을 고친 것이다. 건립 동기는 비명에 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민간신앙 외에 일본 황실을 위해 죽은 사람을 신으로 높여 존숭함으로써 천황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패전 직전까지 국가가 관리하던 이 신사는 패전 후 정교분리의 헌법에 따라 종교법인으로 독립됐다.

종교법인 야스쿠니 신사의 규칙 3조는 ‘본 법인은 메이지 천황이 말씀하신 야스쿠니의 성지에 의거해 국사를 위해 순국한 사람들을 봉제하고 신도의 제사를 행하여 그 신덕을 널리 알리고 본 신사를 신봉하는 제신 그 외 숭경사를 교화·육성…’한다고 성격을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는 법률상 순수한 종교활동을 목적으로 한 종교단체다. 따라서 어떤 형식으로든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국비 또는 공공비용의 지출은 일본헌법(89조)에 의해 금지된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안치된 사람은 246만여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메이지유신 전후의 내란에서 희생된 7751명을 비롯해 서남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과 한국진압, 제1, 2차 세계대전과 만주·중일전쟁 등 일본의 침략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이 합사돼 있다. 1978년 가을 A급 전범이었던 도조 히데키 등 14명을 몰래 합사했는데, 이 사실이 이듬해 4월 판명되자 일본 국민도 놀랐거니와 이웃나라들도 경계하게 됐다. 이 곳에 합사된 A급 전범이 B급 C급 전범과 함께 ‘연합국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처형된 쇼와 순난자(昭和 殉難者)’로 표현된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야스쿠니 신사 규칙에서 언급한 ‘메이지 천황이 말씀하신 야스쿠니의 성지에 의거해’라는 취지에 부합한다고 해석한 것도 일제의 침략을 받은 나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4월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이후 계속 “일본의 번영은 전몰자들의 희생 덕분이다.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것이 왜 헌법에 위배되느냐”면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전몰자 대부분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이라는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주장은 역사교과서에서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대외침략에 앞장선 인물을 치켜세운 현상과 다를 것이 없다. 이는 참의원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것 외에, ‘국민의식’을 반이성적으로 유도함으로써 일본이 직면한 정치 경제적 국가위기 타개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계획은 일본 내 건전한 지성인들과 종교계의 반발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한국은 주재국 대사와 외교부장관을 통해 강경하게 항의했고, 태평양유족회 등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한국인 징용자 2만1000여명의 위패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도 외교부장을 통해 이례적일 정도로 참배 계획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한국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일본의 대응과는 달리 충분한 이유가 있다. 먼저 야스쿠니 신사가 종교단체인 이상 일본 정부는 정교분리의 명확한 입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정교분리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신사의 지위를 일반종교 위에 두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만행을 연상시킨다.

신사참배의 피해를 가장 혹심하게 본 한국으로서는 일본 총리의 공식적인 야스쿠니 참배가 군국주의 시대 천황제로의 회귀 기도라는 일말의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일본 총리의 공식 참배는 일본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전범들이 획책한 침략전쟁을 정당화 또는 미화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침략을 정당화한 역사교과서가 일본정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고 발뺌하던 것과는 달리 일본 정부로서는 새로운 딜레마가 될 것이다.

이만열(숙명여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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