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것 찾는데 또 우리것 내주나

  • 입력 2001년 7월 27일 18시 44분


한국이 프랑스 소장 외규장각도서를 국내 고문서와 ‘맞교환’하기로 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는 우리 것을 돌려받는데 또 우리 것을 내주는 꼴인데다 사실상 프랑스의 약탈행위를 정당화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협상을 벌여온 양국은 이 도서를 한국에 소장된 상응한 고문서와 ‘상호대여’형식으로 바꾸기로 합의하고 9월부터 실사작업을 하기로 했다. 양국 실사팀은 이들 도서 297권 중 우선 64권으로 추정되는 유일본(唯一本)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물론 우리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텄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는 않다. 협상단은 이 방식이 각국의 약탈문화재를 많이 소장한 프랑스의 입장도 고려한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프랑스는 유일본을 주는 반면 우리는 복본(複本)이 있는 것만 주기 때문에 등가(等價)교환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합의는 그동안 한목소리로 맞교환 방식에 반대해온 우리학계의 의견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우리로서는 91년 이 문제가 제기된 이후 일관성있게 일을 추진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의도에 휘말려든 것 같다. 그동안 고속전철(TGV) 수입문제 등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었던 만큼 해외문화재 반환선례 등을 제시하며 좀더 강력하게 프랑스를 설득했어야 했다.

이번 합의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내학자들은 문화재를 빼앗아간 프랑스에 면죄부를 주는 격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대규장각 등 관계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프랑스에 책을 내주지 않겠다는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다. 영구반환말고는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의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소장도서를 가져간 것은 국제법상 분명 약탈행위였다. 그런데도 이를 돌려받기 위해 우리의 다른 고문서를 내준다는 것은 모순이다. 해외에 있는 우리문화재 7만여점의 반환협상에도 나쁜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상호대여’방식은 최장 4년 이상 문화재반출을 금지하는 문화재보호법에도 저촉된다. 아무리 국제간의 협상이라고 하지만 국내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합의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문화관광부 외교통상부 등 관계부처는 시간을 갖고 원점에서 전략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국제법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거나 프랑스여론을 일깨우면서 ‘영구임대’를 재추진하는 등 여러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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