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金위원장, 왜 러시아에 갔는가

  • 입력 2001년 7월 26일 18시 39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주변국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모스크바 방문은 1986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러시아 방문 이후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15년 만에 처음인데다, 북-러 쌍무관계는 물론 한반도 주변 4강의 역학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은 현실적으로 러시아로부터 군사원조를 받으려는 북한과 한반도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의도, 그리고 시베리아철도 이용 등 양국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냉전체제 붕괴와 한국 러시아의 국교정상화로 거리가 생겼던 북-러관계는 이번 김 위원장의 방문을 계기로 복원될 전망이다.

북-러관계의 이 같은 관계복원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삼각관계가 결속단계에 들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16일 새로운 중-러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두 나라는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됐다. 김 위원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중국을 방문했고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 주석은 9월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다.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도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반대로 전통적 우호관계에 있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외교적 공조는 어느 때보다 약화된 게 사실이다.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한국의 햇볕정책에 대해 선뜻 동의하지 않고 있고 한일관계는 교과서 문제 등으로 상당한 난조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은 최근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반대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 체제 실험을 강행했다. 부시행정부는 앞으로도 MD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어 한반도 주변 4강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주변상황이 이처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우리는 어떤 새로운 외교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석하는 4자회담은 99년 7월 제6차 본회담 이후 문을 닫은 상태다. 특히 남북대화는 몇 달 째 정체중이고 북-미관계는 더욱 악화될 조짐만 보이고 있다. 북한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남북대화’를 거부하면서 미국을 강력히 비난하는 안보보고서만 제출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은 대남(對南) 대미(對美)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른바 북한의 ‘뒷밭’을 다져놓겠다는 의미도 있다. 급변하는 주변상황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외교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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