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강헌/방송사-연예인싸움 감상법

  • 입력 2001년 7월 18일 18시 31분


MBC 보도국 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과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간의 분쟁이 2라운드로 접어들면서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문제의 시발점은 이 프로그램이 연예인을 제작사의 ‘노예’로 규정하여 문화산업 종사자 모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연제협’의 사과 요구에 대해 MBC측은 여전히 보도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고 ‘연제협’ 소속 연예인들은 MBC 프로그램에 대한 출연 보이콧이라는 미증유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생각은 이번 일이 한낱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수준의 해프닝으로 유야무야 끝나지 말고 깊숙하고 본질적인 지점까지 파고들어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태는 어느 순간 우연히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1960년대 공중파 TV 방송이 시작되면서부터, 더욱 구체적으로는 1970년 제3공화국 시대의 특별소비세 인하로 TV 수상기 보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부터 존재해온 근원적인 종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스타 시스템과 맞물려 발생한 숱한 비리 파동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은 흐지부지되는 수준으로 끝나거나 기껏해야 PD 몇 사람이 사직하는 선에서 처리되는 것으로 끝났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현실은 원점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왜 악순환의 고리는 근절되지 않았는가? 그 고리의 첫 번째 매듭은 스타 매니지먼트 산업의 성격상 매스미디어, 그 중에서도 TV를 통한 ‘스타 만들기’가 다른 어떤 경로보다 비용 대 산출비(cost performance)가 높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공급(스타 제작사)은 무한대로 늘어나는데 수요(방송)는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면을 타야’했고, 이른바 ‘일테백라’(한번 텔레비전에 나가는 것이 백 번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 같은 슬픈 사자성어가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공식적인 제작과 마케팅 비용보다 음성적인 로비 비용이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자리잡게 되어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투명한 산업 모델로의 진화가 힘들어졌고, 나아가 제작사 대 스타 지망생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즉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은 자신의 배당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 필연적 수순이며 매니지먼트사측은 불신으로 인해 말을 바꿔 타는 스타에 대한 배신감에 몸을 떨 수밖에 없는 셈이다. 가장 확실한 계약서는 무명 시절에 찍어둔 ‘포르노’라는 살벌한 푸념이 한때 나돌았던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책임은 무소불위의 헤게모니를 누려온 공중파 방송사들이다. 어떤 논리로도 공중파 방송사들은 자신들이 누려온 ‘문화권력’에 대해 부인할 명분이 없다. 방송사들은 시청률 경쟁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상기하고 대중문화 관련 제작에 대한 지금까지의 접근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는 앞으로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뇌관으로 존속할 것이다.

제작사 또한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로 문화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관행상 어쩔 수 없었던 비합리적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공중파 방송에 목매달지 않는 다각적이면서도 중장기적인 스타 시스템을 도출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본질적인 해결 노력이 없는 대치 상태는 누가 더 힘이 센지 겨루는 감정적인 차원의 대립에 불과하다.

스타는 대중문화의 꽃이며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 방송사들은 이들을 더 이상 ‘예능제작국’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양제작국’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개혁해야 한다. 그리고 스타 시스템은 한국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방송사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존립 전략을 획득할 때가 되었다.

강 헌(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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