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세정/집단 이기주의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35분


최근 발표된 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 미국 일본의 윤리의식 비교연구’라는 설문 결과는 세 나라 국민의 사회윤리 의식에 관하여 흥미 있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집단 이기주의적 경향을 평가하는 질문인 ‘사회에 피해가 되더라도 내 직장에 이익이 된다면 적극 협조한다’는 문항에 대해 일본인의 79%, 한국인의 72%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반면 미국인은 4%만이 긍정적으로 답변했다는 것이다. 즉 일본과 한국의 집단 이기주의적 성향이 미국보다 훨씬 강하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러한 국민 의식이 최근 우리의 어지러운 사회상을 설명해주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행태를 그동안 노사분규나 의약분쟁, 언론과 정부의 대결 등에서 끊임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일부 식자들은 레밍(lemming)이라는 동물은 먹이가 부족하면 무리의 일부가 집단 자살함으로써 나머지를 살린다는 예를 들면서 이 같은 집단이기주의를 동물보다 못한 행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화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동물이 자기 유전자의 보존과 번식을 꾀하는 것은 자연 본능이라고 한다. 레밍의 일견 이타적인 집단자살 행위도 전멸을 막기 위해 일부를 희생하는 유전자 차원의 이기적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도 자연적인 본능의 발현일 뿐이다. 문제는 그 ‘집단’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위의 설문에 의하면 미국인은 그 집단을 크게 ‘사회’로 보는 반면 한국인들은 더 좁게 ‘내 직장’ 혹은 ‘자기 친구’ 등이라고 보는 것 같다.

▷진화 생물학의 원리를 적용해 본다면 이러한 경향도 미국에서는 사회가 잘 되는 것이 개인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그보다 자기 친구나 친척의 도움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우리의 과거 경험을 돌아보면 이런 생각에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배는 침몰하고 있는데, 그 배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보다 그 안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운다면 매우 어리석은 이기주의가 아닐까.

오세정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sjoh@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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