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용중/'신문 욕보이기'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40분


묵은 필름을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의 상기된 표정, 조금은 어눌하면서도 그러나 단호한 말투….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는 흡사 군사정권 때의 간첩단 검거 발표와도 같았다. 막대한 세금추징만으로는 모자라 몇 신문사의 사주들을 조세범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치밀하게 짜여진, 그러나 쉽게 억지가 드러나는 시나리오이다.

‘…고발된 신문사의 사주가 저지른 비위를 보시오. 명색이 신문사 사주라는 이들이 사원들한테 줄 회사 돈으로 비자금을 만들고 엉터리로 주식증여를 했는가 하면 회사 공금까지도 챙겼소….’

그것은 공권력의 신문을 향한 전면전쟁의 선포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그러나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문사에 창피를 주는 데 더 열을 올리고 있다. 세금추징이라는 처벌 외에 명예나 도덕성, 자부심에 최대한의 상처를 주어 신뢰를 잃게 하려는 저의가 극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옛말에 선비는 죽일 망정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서 권력은 이런 정도로까지 냉정을 잃고 있는가.

금년 초의 연두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언론개혁 필요성을 제기한 뒤 정부가 벌인 일련의 조사 끝에 내려진 결정은 권력 내부의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세무조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는 썩 좋은 무기였다. 언론을 다루면서 탄압이니 간섭이니 하는 비난을 면하자면 세금에 관한 약점을 파헤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세금 탈루나, 심지어 사주 개인의 비위사실도 들춰낼 수가 있었다. 이제는 검찰이 신문사의 뒤를 캐고 그 내용이 적당한 회로를 통해 전파되고 확대재생산되는 사태가 끝도 없이 거듭될 전망이다.

여당 구실도 바로 못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은 민주당이 이 문제를 가지고 펄펄 뛰고 있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정치인은 청탁이나 친불친(親不親)을 가리지 않고 당선을 위해서라면 정적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 신문이 아무리 밉게 굴더라도 정면으로 내색하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그런데도 최근 민주당이 벌이는 언론공격은 이성을 잃었다. 신문을 ‘최후의 독재권력’이라고 막말을 퍼붓는 데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끊임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신문의 책무는 언론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누리는 최고의 가치이다. 그 가치에 도전하는 민주당의 언동은 적의에 차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공직자를 비방했다는 것을 쟁점으로 뉴욕타임스가 소송을 당했을 때 미국 대법원은 ‘확인된 사실에 한해서만 공직자를 비판할 수 있다면 신문은 공직자를 칭찬만 하라는 것과 같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늘까지 신화처럼 전해오는 ‘실질적인 악의(Actual Malice)’론이다. 요컨대 신문의 자유란 권력과의 끊임없는 대결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교훈적인 판결이었다.

지금 언론과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김대중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특히 비판적인 신문과 동지적인 연대를 무기로 삼아왔다. 그런 신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창피를 주는 것이 과연 조세정의의 실현이나 언론개혁을 위해서인가. 조세정의라면 당당하게 추징금을 징수하는 절차를 취하면 족하다.

버거운 추징금 때문에 신문사 중에는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보다 더 힘겨운 것은 어떻게 신문의 권위를 지키며 훼손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느냐는 부담이다. 특히 시장에서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경쟁질서를 바로 세우고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 작업은 얼른 정답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일은 그러나 어느 특정 언론사의 능력과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막중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본질이 훼손되고 말았지만 언론개혁의 필요성은 여전히 절실한 과제이다. 경영의 투명성, 시장질서의 자율성 확보는 당연한 출발점이다. 그보다 더 절실한 과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정한 보도와 비판, 그것을 통한 신문의 신뢰 회복이다. 그러한 신문의 전문분야에서 신문은 권력이 깜짝 놀랄 정도의 개혁을 이루어 꿋꿋한 신문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

조용중(언론인·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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