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상철/탈북자 보호 정공법 택해야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40분


장길수군 가족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중국 베이징 사무소 진입 농성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3일 만에 ‘제3국 추방후 한국입국’으로 귀결되었다. 강제송환되지 않아 다행이긴 하나, UNHCR 대표가 “일부 건강문제가 있어 그들의 제3국행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 발언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본래는 제3국행에 찬성치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길수군 가족의 강제송환은 UNHCR 사무소에서 난민지위 신청을 한 사실이 전세계에 공개된 순간 이미 불가능해졌다. 중국은 작년 1월 UNHCR가 난민으로 인정한 7명의 탈북자를 북한에 강제송환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게다가 그 7명 중 1명은 올해 4월 재차 탈북하여 강제송환 후 온갖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해 체중이 26㎏으로 줄고 정신장애가 일어날 정도였다고 전세계에 증언했다. 중국정부의 국제법위반행위가 가져온 참담한 인권유린의 실상을 만천하에 폭로한 것이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길수군 가족을 강제송환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특히 2008년 올림픽 개최지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결정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또 치외법권을 누리는 UNHCR가 길수군 가족을 중국정부에 넘겨주는 일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분명히 국제난민협약상의 난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이목을 끈 길수군 가족 사건을 통하여 정부는 탈북자 문제의 제도적 개선책을 모색해야 했다. 지금도 10만명을 헤아리는 탈북자들은 ‘도망칠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는’ 처지이다. 길수군 가족이 자유를 찾았다는 안도감 속에 다른 탈북자들이 잊혀진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정부는 ‘제3국 추방후 입국’도 무방하다는 암시를 줄 것이 아니라 국제난민협약의 준수를 중국정부에 강력히 촉구했어야 한다. 난민 여부를 판정하도록 하고, 난민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밝히도록 했어야 한다.

길수군 가족이 UNHCR 사무소에 진입해 난민신청을 한 것은 탈북자의 난민신청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회에 절차를 제도화하도록 했어야 한다. 난민지위 신청 후 판정까지는 강제송환이 금지되므로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면 된다. 중국정부는 국제법으로 설득되지 않는다고 속단하는 것은 자국민 보호를 포기하는 패배주의적 자세이다.

중국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보는 태도는 우리의 관심과 의지, 국제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이다. 탈북자 난민보호를 요청하는 청원서에 1180만명이 서명하여 유엔에 전달한 바 있고, 세계의 주요 언론이 탈북자의 비극을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거대한 아집과 폭압도 인권과 양심이라는 작은 바늘 끝으로 인해 무너지는 법이다. 정부와 국민은 지레 포기하지 말고 탈북동포의 난민지위 획득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정부와의 교섭에서 당당하게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김상철(변호사, 탈북난민보호UN청원본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