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구조조정 3년/은행들 변화]사후관리 '깐깐'…내부통제 '허술'

  • 입력 2001년 6월 28일 18시 26분


“예전에는 지점과 안면을 트지 못하거나 꺾기(대출금의 일부를 예금에 가입하는 것)를 하지 않으면 대출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거꾸로 은행원들에게 접대를 받고 있습니다” (서울 금천구 S업체)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혹시 은행들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해 부실이 다시 늘어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부실채권을 막느라 137조원이라는 막대한 규모의 혈세를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쓰지 않았는가. 그러나 대출관리는 전보다 더 철저하다는게 은행들의 주장이다.

경기 시화공단 H업체 자금담당자는 “예전에는 1년에 한번 올까 말까했던 은행원들이 한달에 한두번씩은 들러 업체동향과 자금흐름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기업대출이 나간후 사후관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2년도 채 안된다. 과거에는 대기업들이 은행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해 자금상황 등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도 안해줬다”고 회고했다. 기업이 대출을 제대로 갚을수 있는지 은행들이 정기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정상기업은 연간 2회, 이상징후기업은 3개월마다 여신심사역들이 직접 해당기업을 방문해 업종현황과 실적을 조사하고 대출금상환능력은 충분한지를 점검한다.조금이라도 의심가는 구석이 있으면 곧바로 여신규모를 줄인다.

“은행도 장사를 제대로 하려면 원래부터 이래야했다. 이유야 어찌됐건 은행들을 경쟁으로 내몬 결과 아니겠느냐”는 서울 금천구 S업체 김모사장의 말처럼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매우 컸다.

소비자금융 부문에서도 고객의 편리성이 가장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았다.

맞벌이 주부인 이경아씨(29·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밤에 공과금 자동이체와 송금 등 은행업무를 주로 한다. 이씨는 “영업사원이어서 은행 창구에서 기다릴 여건이 못되는데 밤에 집에서 일을 볼 수 있고 수수료도 적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강제로 퇴출된지 3년이 지난 지금 은행들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은행 수익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돼 주가가 오르는게 이를 반영한다. 그래서 껍데기(하드웨어)를 바꾸는데는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BIS(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 산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부실채권감축 노력은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아직 멀었다는게 중론이다. 일부은행에서 아직도 빈발하고 있는 각종 금전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신분에 불안을 느낀 일부 직원들이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은행들이 대신 받고 있는 세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사건도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은행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외국계 은행들은 토종은행들의 시장을 빼앗고 있다. 특히 돈많은 고객들이 ‘문닫을 걱정이 없고, 비밀이 철저히 보장된다’며 외국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외국은행들도 이를 틈타 지점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고객유치에 나서고 있다. 과연 외국은행과 견줄만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인가.

아직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는 일부 합병은행도 문제다. 은행의 구조조정방식을 고쳐야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무조건 합병해서 덩치만 키운다고 경쟁력이 커진다는 식의 구조조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도 과연 성공리에 끝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갈길이 멀다는 지적도 많다.

이런 점에서 지난 3년간 계속돼온 금융구조조정은 아직 평가하기 이른 점도 있다.

<김두영·이헌진기자>mung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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