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믿었던 친구들이…"

  • 입력 2001년 6월 19일 18시 38분


30대 후반의 박모씨. 그는 요즘 몹시 피곤하다. 아무 일도 하기 싫고, 누구도 만나기 싫고, 그저 조용히 좀 쉬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큰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 지지부진해 문을 닫은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의욕 하나는 대단했었다. 가족들은 좀더 경험을 쌓고 시작하라고 했지만, 기왕 자기 사업을 하려면 젊을 때 하고 싶었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약간의 자금과 그동안 넓혀온 인맥만을 믿고 회사를 차렸다.

처음엔 그런 대로 굴러가는 것 같던 일이 자금이 달리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번 돈 문제가 꼬이자, 아주 약간의 자금도 융통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선후배나 친구들이 그를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그의 사업이 어렵다는 얘기를 퍼뜨린 직후였다. 모두들 그가 혹시나 돈 얘기를 꺼낼까 봐 몸을 사렸던 것이다. 물론 그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가 잘 나가던 시절, 그에게서 도움을 받은 친구들일수록 앞장서서 그를 외면했다.

“그때부터 사업이고 뭐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겁나더군요.” 그의 말이다. “배신감도 들고, 허탈하고, 그동안 난 뭘 했나 싶고,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일종의 무력감이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건 정말 끔찍하더군요.”

그후 지금까지 그는 피로와 무력감, 대인관계 기피증까지 겹쳐서 고생하고 있다. 특히 의무감으로 사교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뿐인 사람들과의 만남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느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어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무력감으로 고생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는 평소 스스로 대인관계를 잘한다고 믿었고, 인맥이 넓은 것도 큰 자랑이었다. 그런데 막상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모든 것이 소용없어졌으니 무력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그런 경우, 무리하게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또 대인관계를 잘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뭘 잘못했나 반성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인간관계가 조금 소홀해지더라도 더 이상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좀 쉬면서 여유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마음에 평온이 찾아올 때까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그 다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그것을 거꾸로 행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www.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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