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여소야대

  • 입력 2001년 6월 7일 18시 32분


“과거에는 당내에서 다양한 성향을 지닌 정치인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당의 의제를 설정해갔습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의회의 기능은 축소됐고 의원들은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당연시됐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낙태문제, 사법제도의 방향, 세금과 재정지출, 미사일 방어, 에너지와 환경문제 등에서 대통령에 반대해야 할 것을 압니다. …저는 일생동안 지켜왔던 양심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공화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남기로 했습니다. 저는 저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미국 공화당의 제임스 제퍼즈 상원의원(버몬트주)은 2주일 전 이렇게 연설했다. 보수우익에 편향된 부시 정권의 공화당에서는 자신의 ‘양심과 원칙’을 지킬 수 없기에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탈당 선언이다. 5일 그가 탈당계를 상원에 공식 접수시킴으로써 미 상원은 졸지에 민주당 50, 공화당 49, 무소속 1의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바뀌게 됐다. 숫자 하나의 의미는 엄청나다. 상원 17개 상임위원회와 3개 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몽땅 공화당에서 민주당 몫으로 돌아가니까.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실로 취임 이후 입은 최대의 정치적 타격이라 할 만하다.

▷물론 미국이라고 탈당하기가 간단한 것도, 제퍼즈 상원의원의 마음이 편했던 것도 아니다.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에 반대표를 던지고 탈당하기까지 그는 백악관과 동료의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심지어 신체적 위협까지 받았던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 그러나 그는 소신껏 탈당했고, 부시 대통령은 그런 그를 무소속 상원의원 자격으로 공화 민주 상원의원들과 함께 백악관에 초청해 교육개혁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노태우 정부 이후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줄곧 여소야대 현상이 이어졌다. 다만 어떡하든 이를 여대야소(與大野小)로 뒤집은 것이 미국과 다른 점이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권력 분할을 받아들일 수 없는 풍토에서 여야(與野) 상생(相生)정치란 말뿐이기 십상이다. 오늘의 정치불안, 국정위기 또한 거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던가.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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