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철학, 구름에서 내려와서

  • 입력 2001년 5월 25일 18시 52분


◇"철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이들의 단순한~"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는 자업자득인 셈이죠. 철학이 현실을 소외시키다 보니 이제는 현실이 철학을 소외시키기 시작한거에요.”

서울대 철학과 황경식 교수는 그동안 철학이 얼마나 ‘뜬구름잡는 이야기’만을 해왔는가를 반성하면서 책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철학, 구름에서 내려와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구름 위에 노닐던’ 철학을 ‘속세’로 끌어내려 불안과 혼돈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것.

황 교수는 ‘철학과 어린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훌륭한 철학자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그는 “현대인들이 철학을 어렵고 따분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철학을 친숙하게 느끼게끔 훈련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이 책을 통해 현대인들이 지금이라도 철학과 친숙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저자가 철학과 현실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생명 공학, 정보화 사회, 성의 해방 등 철저히 ‘속세’의 현대인들이 고민하고 염려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는 게놈 프로젝트의 발전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야기시키는지, 사이버 공간에서 자아정체성 확립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깊이있게 분석했다.

“게놈 프로젝트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유전자 결정론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게놈 프로젝트 덕분에 병을 진단하기는 쉬워질지 모르지만 치료법이 제 때 개발되지 못하면 ‘아는게 병’이라는 속담처럼 인간은 더욱 불행해질 뿐이에요.”

그는 정보화 사회의 명암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다양한 자아를 표출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도덕성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도덕성이란 기본적으로 이중인격을 부정하기 때문이죠. 자아 해방을 도모하기 이전에 익명성 때문에 발생하는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철학이란 한 순간도 현실과 괴리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가령 ‘임신 중절이 살인인가’의 문제를 논한다고 합시다. 이를 규명하려면 태아가 인간인지를 규정해야 할테고,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로 귀결되죠.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바로 철학의 역할입니다.”

그는 “현실을 떠난 철학이란 ‘그들만의 학문’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학문’을 만들기 위한 인문학자들이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경식 지음 372쪽 9500원 동아일보사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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