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굿바이 생체실험" 국내 첫 가상세포 개발 성공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53분


앞으로는 생물학자들의 연구실에서 시험관과 동물이 사라지고 고성능 ‘다마고치’가 이를 대신하게 될 것 같다.

국내 산학연 공동 연구팀은 최근 미생물과 똑같이 작동하는 사이버 생명체인 ‘가상 세포’를 만드는 데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생물학자들은 이 가상세포를 이용하면 힘든 생체실험(in vivo)이나 시험관실험(in vitro)대신 컴퓨터 모의실험(in Silico)만으로 생명현상을 연구하고 의약품을 설계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대사 및 생물분자공학연구실 이상엽 교수팀은 22일 바이오인포메틱스(주)와 한국IBM 공동주최로 열린 생물정보학 학술대회에서 산업적 응용 가치가 큰 맨하이미아 55E(사진)라는 신종 미생물을 발견해 염기서열을 파악하고, 이 미생물을 똑같이 닮은 일종의 사이버 생명체인 ‘가상 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맨하이미아균은 이 교수팀이 지난해 국내 도살장에서 수집한 소의 반추위(되새김질을 하는 위)에서 발견한 신종 발효균으로, 식품첨가물과 공업용 원료로 가치가 큰 숙신산을 만든다. 이 발효균의 특허를 사들인 바이오인포메틱스(주)는 제노텍(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팀에 연구비를 지원해 최근 두 달 사이에 이 균의 염기서열 225만개 가운데 98.5%를 파악했다.

이 교수팀은 이 염기서열을 토대로 유전자들의 기능을 확인해 실제 이 균과 똑같이 작동하는 고성능 다마고치를 만들었다. 이 가상세포는 맨하이미아균이 포도당 유당 등을 숙신산 아세트산 에타놀 등으로 바꾸는 대사 과정에서 일어나는 286개의 복잡한 화학반응을 수학적 계산식으로 만들어 그 결과를 컴퓨터 화면에서 그림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 교수팀은 ‘가상세포’로 실험을 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숙신산을 생산하는 맨하이미아균을 설계할 수 있는지도 알아냈다. 즉 ‘가상 실험’ 결과 불필요한 대사회로를 없애고,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도록 맨하이미나균의 유전자를 조작하면 10배 이상 숙신산을 더 생산한다는 결과를 얻은 것. 이 교수는 “현재 전세계에서 진행 중인 550종의 미생물 게놈프로젝트의 결과는 모두 ‘가상 세포’형태로 제작돼, 앞으로 손에 물을 묻히고 하는 실험은 최소한으로만 하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될 경우 생물이나 약을 합리적으로 설계할 수 있어, 개발에 드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명공학연구원 허철구 선임연구원은 “가상세포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작동하므로, 대학에서 학생들이 생물을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세포는 지난 99년 미국 코네티컷대 연구팀가 미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아 처음 만들어냈으며, 일본에서도 게이오대 연구팀이 마이코플라스마 제니탈리움이란 미생물이 지닌 유전자 127개를 가지고 ‘E―CELL’이란 이름의 가상세포를 만들어 공개한 바 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