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8인의 비밀스런 삶 통해 본 중세 서양의 역사

  • 입력 2001년 5월 11일 19시 09분


중세 이야기-위대한 8인의 꿈

노만 F 캔터 지음 이종경 외 옮김

350쪽 1만4500원

새물결는 본질적으로 어떤 형태의 국가나, 어떤 통치자 집단도 그 자체로서는 결코 선할 수 없으며, 악하지도 않다고 본다. 문제는 정의다. 만일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게 강탈자 집단이 아니고 과연 무엇이겠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옛 친구인 빈텐티우스와 격렬한 논쟁 끝에 하는 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해 서양 중세의 카리스마적인 이상주의자 여덟 명이, 각자 자기들만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울물처럼 도란도란 흐르다가도 그들의 음성은, 어느 새 분노와 광기에 휩싸여 금새 폭발할 것만 같다. 서양중세 사회를 이끌어나갔던 세 명의 여성과 다섯 명의 남성이 들려주는 내밀한 이야기는, 뜻밖에도 근심과 갈등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그들 모두는 역사의 중대한 시점에서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서양 중세 문화사와 지성사의 대가인 캔터 교수는 오랜 연구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이 ‘이야기’를 지었다. 미국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 이야기에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듣는 옛날 이야기의 구수함이 배어 있다.

치밀한 역사적 고증이 느껴지는 캔터 교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4세기부터 15세기까지 서양역사의 큰 흐름이 손에 잡힐 듯하다.

‘늙은 유대인 매춘부’ 헬레나 황후(콘스탄티누스 황제 어머니).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그녀는 예루살렘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중세가 동터옴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타협할 줄 모르는 환상가’ 아우구스티누스 이야기에선 검은 아프리카의 아들이 땀과 눈물로 빚어 낸 중세적 정서도 눈으로 보는 듯 여실하다(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 출신이었다). 귀족들의 탐욕과 정복욕에 굴복 당한 학문적 지성 요크의 앨퀸(샤를마뉴 시대의 학자)과 로렌의 훔베르트(교회개혁가)의 일생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것은 실패한 이상주의자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중세를 대표하는 페미니즘 이론가이며 이름난 종교서적의 작가인 ‘가장 아름다운 여성’ 빙엔의 힐데가르트(여성학자). 아들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왕인 남편에게 칼을 뽑아 들어 결국 영국의 왕비가 된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도 있다. 남다른 개성의 소유자였던 이들 여성은 법률과 관료제로 굳게 무장한 남성들의 상대가 되기에는 아직 너무나 허약했다.

학문과 사랑, 자유와 정직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로버트 그로테스트(영국 옥스퍼드대 초대 총장)와 백년전쟁에서 잔다르크와 싸웠던 베드퍼드 공 존(프랑스 잉글랜드령의 마지막 통치자).

그들은 제도권의 중심부를 장악한 권력자들로부터는 가혹한 탄압을 받았으며, 자신들의 정신적 모태였던 지식층으로부터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캔터 교수의 말대로, 실패란 이상주의자라면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특징인가?

백 승 종(서강대 사학과 교수)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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