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깨뜨려야할 '속좁은 가족주의'

  • 입력 2001년 5월 11일 19시 09분


부모님, 아이, 가정, 스승…. 5월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인간관계의 촘촘한 그물을 다시 한번 느끼는 달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고 그들에게 고마워하는 때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만 챙기는 우리의 습성은 이러한 감사의 뜻을 오히려 이기적인 것으로 변질시키는 폐단을 낳아왔다. 모두 ‘우리 주위’를 챙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런 풍토에 대한 문제제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 이러한 가족주의에 반기를 드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학문과 대중 사이의 깊은 골을 성큼 뛰어넘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장 최근의, 자극적인 연구서 제목은 역시 이득재 교수의 ‘가족주의는 야만이다’(소나무·2001년)이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가족이 할 일과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마땅히 국가가 할 일을 가족에게 떠넘기며, 온 사회가 가족이란 신성한 것이라고 찬미해주는 ‘가국체제(家國體制)’라고 비판한다. 국가/사회/개인이 각각 할 일의 경계선을 흐리면서 희생을 개개인에게 지우는 도구가 ‘가족주의’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권명아의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책세상·2000년)도 한국 문학, 특히 소설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한국전쟁 이후 ‘믿을 건 내 피붙이뿐’이라는 생각이 문학에 어떻게 반영되며, 그것이 자기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냉혹하게 작동하는 ‘타자 배제의 원리’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박완서의 대표소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세계사·2000)에 대한 분석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는 가족이라는 생각은 신화일 뿐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가족 안에만 있으면 모든 슬픔과 외로움이 사라질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 있지만, 사실은 가족 안에서도 끊임없이 사회적이고 계급적인 갈등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족주의의 도그마를 힘겹게 깨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족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확대 해석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연구자들이 비판하려 한 것은 개개인이 가족에 눈멀어 사회적인 의무와 책임들을 방기하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어린이날이 내 아이를 데리고 하루 밖에 나가 노는 날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날로 바뀌고, 어버이날이 내 부모님께 용돈 드리는 날이 아니라 노인문제의 해결에 힘을 쏟는 날로 바뀐다면 가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필요 없어질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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