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소행성 '통일' 발견-명명 이태형씨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50분


《“별을 바라본 순간을 기억하세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반짝이는 별과 함께 그 밤의 아름다움도 간직하고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별을 올려다본 지가 글쎄, 언제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거나, ‘별 볼일’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조하는 사람이라면 ‘별에 미친 남자’ 이태형(李泰炯·37·천문우주기획 대표)씨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 그는 98년 9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소행성을 발견, 최근 국제천문연맹(IAU)으로부터 공식인정을 받고 그 별에 ‘통일’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 별이 좋아 별만 바라보다, 사람들에게 별을 느끼게 해주는 일을 비즈니스로 삼은 그는 이제 조금씩 배가 나오기 시작한 ‘386세대판 어린 왕자’같았다. 》

1.나는 어린 왕자가 떠나온 별이 소행성 B612호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내가 소행성 B612호에 대해 이렇게 번호를 붙여가며 자세히 이야기하는 건 다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만약 여러분이 새로 사귄 친구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결코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생 텍쥐베리 ‘어린 왕자’중)

이씨가 발견한 별은 ‘1998 SG5’라는 임시명칭을 거쳐 지난달 말 ‘소행성 23880’으로 공식 고유번호를 받았다. IAU는 소행성 발견자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를 주는데 이씨에 따르면 그 이유가 지극히 현실적이다. “수없는 소행성들의 정확한 궤도를 알아내서 지구에 위험요소가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딥임팩트’와 ‘아마겟돈’이 소행성 충돌 위험을 그린 영화지요. 그러자면 소행성을 발견하는 아마추어 천문가가 계속 나와야하니까 발견자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게 해주는 미끼를 주는 겁니다.”

그가 ‘통일’별 발견에 나선 것은 일종의 오기에서 비롯됐다. 지금까지 소행성이 8000여개 발견됐지만 한국인 발견자는 없었다. 우리말 이름을 가진 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륵’(77년 발견) ‘나’(95년) ‘세종’(96년)은 모두 일본인이 붙인 이름이다. 98년 봄 이씨는 소행성 발견 노하우를 한수 배우러 ‘세종’의 발견자인 와타나베 가즈오씨를 찾아갔다. 장비는 그들이 훨씬 앞섰으나 밤샘하며 버티는 끈기는 우리만 못한 것 같았다.

그해 9월16일. 날씨가 무진장 좋았다. 부부동반 저녁모임이 있었으나 도저히 별을 안보고는 못배길 것 같았다. 장비를 챙겨들고 경기 연천으로 달려갔다. 처음보는 별 서너개 중 한개가 유난히 마음에 당겼다. 사진은 찍었는데 흥분하는 바람에 초단위 시간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튿날 밤 또 갔다. ‘그의 별’이 있는 곳에만 구름이 끼는 바람에 사진이 안찍히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은 대전에서 별보기 행사가 있었다. 한밤중에 계룡산에 올라가 간신히 사진을 찍었다. ‘통일’은 그렇게 이씨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소행성을 발견한다는 건 모래밭에서 아무도 보지 못한 금빛 모래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찾는 거야 어떻게든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다시 그 자리에서 ‘그 놈’을 찾는 건 쉽지 않아요.”

그는 별을 바라보는 어린이들이 통일에 대해 한번쯤 더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통일’이라고 이름붙였다고 말했다. 그들이 어른이 됐을 때는 우주여행도 더이상 꿈이 아닐터이므로.

2. 수백만개 하고도 또 수백만개나 되는 별들 가운데서 하나밖에 없는 어떤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거야. 그 사람은 ‘저 별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하고 생각할거야. (생 텍쥐베리 ‘어린 왕자’중)

별을 발견하고, 거기 이름을 붙이는 게 무에 그리 중요하랴. 이씨가 좋아한 것은 그냥 맨눈으로 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술이 한잔있고, 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함께 있으면 더욱 좋았다.

“대학 2학년 때 여행을 다니고 싶어 동아리방을 기웃거리다 아마추어천문학회에 들어갔어요. 그 해 여름 지리산 관측여행을 갔죠. 소나기가 그친 밤에 하늘에 쫙 열리는데 우와, 은하수가 펼쳐지면서 내 머리속으로 별똥별이 쏟아졌어요.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신이 내린다’는 말이 있다. 그날 밤 이씨에게는 별이 내렸다. 그가 좋아하는 ‘돌고래 별’에 얽힌 가슴저린 사랑의 기억도 있고, 배신의 아픔을 떨치려고 대학원 시절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책을 써서 성공했을 만큼 그의 삶은 별과 운명처럼 연결돼 있다. 그래도 짖궂게 물어봤다. “별을 본다고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 도대체 별을 왜 보느냐”하고. 그는 “아버지를 비롯해서 사람들한테 그런 질문을 10년넘게 들었다”며 웃었다.

“나한테 별은 믿음이예요. 변치않는다는 믿음,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난다는 믿음. 사람이나 세상은 우여곡절도 있고 개벽을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별은 구름이 끼어 지금은 안보이더라도 거기 언제나 있어요. 얼마나 든든해요.”

별에 마음을 주게 되면, 세상 어디서나 밤하늘을 보는 순간 그곳이 ‘홈그라운드’가 된다. 없던 기운도 펄펄나서 한점 이기고 들어가는 곳이 홈그라운드다. 그래서 이씨는 어디서나 자신이 있다. 게다가 내가 보는 세상의 반은 하늘이니, 하늘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면 세상 아름다움의 절반은 잃고 사는 셈이 된다.

“요즘 아이들, 겁많고 용기가 부족하다고 하죠. 별보는 것만 일러주면 자기가 선 곳이 홈그라운드가 돼요. 환경보호, 백번 떠들어봐야 소용없어요. 별만 보여주면 그날부터 분리수거하고 제가 알아서 환경보호해요. 또 꿈과 낭만이 있으니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죠. 우리가 서울만 생각하면 서울사람일 뿐이지만, 내 머리속에 우주가 있다면 우주인으로 살 수 있지 않나요. 삶에 대한 스케일이 달라지는 거죠.”

그러나 지나치게 별에만 빠지지는 말라고 일러준다. 자칫 현실도피적으로 흐를 수도 있으므로. 별이 아름다운 것은 땅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대기가 있어 별은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법. 달에서 별을 보면 그냥 수소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을 ‘별부스러기’라고 해요. 사람몸을 만드는 물질이 대부분 별이 타다 뻥 터져서 나와 떨어진 것들이거든요. 그러니 아무리 ‘웬수같은’ 사람이라도 본질적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우리는 하나였으니까요.”

별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그대로 문학이 되고, 철학이 되는 것 같다고 했더니 이씨는 기분좋게 웃었다. “그래서 별에 관한 학문이 천문학(天文學)이잖아요.”

3.‘모든 사람에게 별들이 다 똑같지는 않아. 여행하는 사람에게 별은 길잡이지. 별을 아주 작은 빛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학자들에게는 별은 연구해야할 어려운 문제일 거고. 내가 만난 사업가에겐 별은 황금으로 만들어졌어. 하지만 이런 모든 별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어. 아저씨는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별들을 갖게 될 거야…’(생 텍쥐베리 ‘어린 왕자’중)

별을 갖고 먹고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화학, 대학원에서는 도시행정을 공부했다. 유학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공부는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지만 별을 대중화시키는 일은 자기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80년대말부터 우리나라에 별 관측 붐을 일으킨 이가 자신아니던가.

94년 500만원 대출받아 사무실을 차리고 ‘천문우주기획’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99년엔 ‘별과 우주’라는 잡지도 냈다. 몇부 찍느냐고 물었더니 “그런건 묻지 마시라”고 했다. 한달에 1500만원씩 적자가 나지만 책인세며, 열쇠고리 망원경 판매금, 별 캠프 등을 해서 번 돈으로 이럭저럭 메꿔나간다. 3일 ‘꿈과 미래를 여는 생활 속의 하늘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대전시민천문대 대장으로도 열심이다.

“나는 내가 하는 사업이 별을 보게 하는 게 아니라 별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고 믿어요. 그냥 보여서 보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별똥별에 소원을 빌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사는 삶은 다르지 않겠어요?”

복잡한 대도시에서, 공해로 꽉 막힌 하늘에서, 어떻게 별을 보느냐고 묻지 말라. 광화문에서도 견우와 직녀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오늘밤, 독자들 중 한사람이라도 고개를 들어 별을 찾아본다면 그와의 만남은 성공이다.

만난사람=김순덕차장

▼이태형씨는…▼

△1964년 춘천 출생

△1983년 서울 중대부고 졸업

△1987년 서울대 화학과 졸업

△1993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1994년 천문우주기획 설립

△1995년 인터넷 포탈천문서비스(www.star joy.net) 개시

△1999년 월간 천문잡지 ‘별과 우주’창간

△2001년 대전시민천문대장 취임

△서울대 아마추어천문회장, 전국대학생 아 마추어천문회장, 컴퓨터통신 아마추어천

문회장, 사단법인 한국 아마추어천문학회

사무총장 역임

△국내최초 남반부 천체사진 촬영(1995년) 국내최초 개기일식 비디오촬영(1995년)

국내최초 하쿠타케 혜성 비디오촬영(1996

년), 국내최초 소행성 발견(1998년) ‘통

일’명명(2001년)

△저서 ‘별따라 꼴따라’‘재미있는 별자리여

행’‘별밤 365일’‘쉽게 찾는 우리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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