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밀착취재]박용성 상의회장 "재계 속앓이 후련하게 대변"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35분


“기존의 정책이라도 제대로 활용하면 되는데 왜 자꾸 신제품을 만드느냐.”

9일로 취임 1년을 맞은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朴容晟·61)회장.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오너의 전횡방지와 관련해 정부가 더 이상 새로운 규제나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재계를 대변해 이같은 ‘신정책 무용론’을 폈다.

박회장은 지난해 12월 29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 자문회의에서는 “기업이 구조조정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추진하라는 것은 한 마리의 사냥개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라는 것과 같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다른 재계 인사들이 겉으로는 말을 못하지만 ‘속이 시원하다’고 격려했다는 후문.

박회장이 재계를 대변해 입바른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은 그가 상의회장 취임후 강조해 온 ‘상의 맏형론’과도 관련이 깊다. ‘맏형 단체’로서 재계 입장을 정부나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할 때 앞장을 서야 한다는 것. 그는 “경제 5단체중 역사가 가장 오래이고 회원사가 가장 많은 상의가 경제단체중 맏형”이라고 취임초부터 강조했다.

박회장은 경제 현안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나타낼 때 적확한 비유법이 담긴 어록들을 쏟아내 눈길을 끌고 있다.

두산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의 방법론에 대해 ‘걸레론’을 폈다. ‘나에게 걸레는 남에게도 걸레다. 구조조정을 하려면 알짜기업을 팔아 의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것.

박회장이 상의 회장에 취임한 후 가장 중시한 것은 중소기업의 정보화. 그는 이를 ‘굴뚝기업 날개론’으로 요약했다. 중소기업들도 정보화를 통해 경영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으로 ‘굴뚝 기업에 날개를 달자’고 말했다.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7월에는 전국 62개 지방 상의를 하나로 묶는 통합 인터넷 사이트인 ‘코참넷’을 개통, 회원사들간의 정보교류를 촉진하고 있다. 상의는 800여개 회원사에는 무료로 홈페이지를 제작해 주었으며 앞으로 30만개 기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기업간 전자상거래(B2B)를 활성화하는 기본 인프라로 삼을 계획이다.

박회장은 개인적으로도 ‘디지털 CEO’에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상의 회장 취임후 대부분의 결재를 e메일로 처리한다. 수시로 임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응답이 늦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가 해외에 출장을 갈 때도 항상 컴퓨터를 가지고 다니면서 국내에 있을 때와 같이 업무를 처리한다.

상의는 2003년부터는 임의단체로 바뀐다. 회원사 의무가입이 자율에 맡겨져 회비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박회장은 이 상황을 “상의가 생사의 기로를 맞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하면서도 “재계 맏형으로 남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가 취임후 임직원을 220명에서 최근 140여명으로 줄이고 회원사에 대한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회장은 “2003년 5월 임기를 마칠 때까지 상의가 변신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기반을 닦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약력▼

△1940년 서울 출생(박두병 두산회장의 3남)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 졸

△상업은행 행원, 한양투자금융 상무, 동양맥주 사장

△두산그룹 부회장, OB맥주회장

△현재 두산중공업회장, 세계유도연맹회장, 대한체육회부회장 등 다수.

△취미; 신간서적 헌팅, 사진촬영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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