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성규/수도권정책 이대론 안된다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33분


프랑스의 한 작가는 그들의 지역문제를 ‘파리와 프랑스 사막’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표현은 1940년대 이후 프랑스의 수도권에 인구와 산업이 과도하게 집중해 파리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사막과 다름없는 낙후지역이라는 의미로 지역간 불균형을 꼬집는 말로 유명하다.

▼인구억제 실패 경쟁력 저하▼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도권과 여타 지역간의 불균형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비수도권의 소외감과 박탈감은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46%, 대기업 본사의 88%, 은행예금 및 대출의 65%, 2차산업 고용인구의 53%가 집중돼 있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의 대도시 인구억제 정책이 시작된 1964년 이후 수많은 수도권 인구과밀억제책과 수도권정비계획,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나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1980년대에는 수도권을 다섯개 권역으로 나눴고 1997년에는 다시 3개 권역으로 나누어 각종 개발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인구 및 산업의 집중을 막으려는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정부는 1994년 간접 규제방식으로 전환하여 수도권에 공장총량제, 과밀부담금, 그리고 준농림지 개발행위 완화 등을 도입하였다.

특히 총량규제 제도는 공장, 학교, 기타 인구집중 유발시설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신·증설 허용 총량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총량제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오늘날 입지 여건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수도권에 첨단산업시설 설치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행위라는 업체들의 반발이 심하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이 없는 잠만 자는 신도시 건설, 난개발로 사회적 물의를 빚는 준농림지 택지개발은 허용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건설은 총량제로 묶고 있으니 정부의 수도권 정책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부의 수도권 정책은 인구집중을 막는 데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토의 균형적 발전도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정부는 수도권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프랑스의 파리권과 영국의 런던권이 과도한 인구집중을 막으면서 수도권으로서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수도권 집중 억제정책은 지방에 대한 집중적 투자와 인센티브 제공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는 지역개발 보조금, 지역기업 보조금, 조세 우대, 지역고용 촉진, 기반시설 확충 등을 통하여 지방을 육성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채찍과 당근의 절묘한 조화 정책이 없이는 수도권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이들 국가는 세계화된 경제체제 속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수도권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노력을 체계적으로 지속해오고 있다.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지닌 부문은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특히 수도권이 지닌 규모의 경제와 집적(集積)의 이익 원리를 최대한 활용하는 정책을 편다.

▼지방 지원책 선행돼야▼

지역균형개발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대도시권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도권 정책은 전면적으로 수정 보완돼야 한다. 지구화되고 정보화의 첨단을 걷는 현실에서 국내 한 지역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다른 지역의 성장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돼 있다. 수도권 집중 억제와 규제의 노력보다는 지방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책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수도권은 대도시권 성장관리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성장관리 정책은 성장의 속도와 내용, 성장의 파급효과를 부문별, 권역별, 시기별로 조정하고 유도하는 정책을 말한다.

정보화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과정 속에서는 지역특성화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중앙정부의 지원과 지방정부의 자율성 창의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지역발전 전략 및 국토관리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는 지역균형개발도, 국가경쟁력 강화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성규(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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