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최일호교수 "'학문으로서 바둑' 연구할만 합니다"

  • 입력 2001년 5월 2일 19시 02분


◇심리학자로 바둑학과 첫 부임◇

"처음 바둑학과에 교수로 오라는 제의를 받고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실제 와보니 해볼 만한 연구가 무척 많은 걸 알았습니다."

대학 바둑학과로 국내에 유일한 명지대 바둑학과에 올해 부임한 최일호 교수(40). 같은 학과 정수현 교수가 프로기사, 김정우 교수가 아마 7단의 강자이고 나머지 강사들도 바둑계 인사인데 비해 그는 아마 3단의 애기가라는 점을 빼면 바둑계와 전혀 인연이 없는 최초의 교수다. 물론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적도 없었다.

고려대 심리학과에서 사회심리학으로 석 박사를 마친 뒤 이화여대와 성균관대에서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던 그는 정 교수의 석사 논문을 도와준 것이 인연이 돼 바둑학과로 오게 됐다.

“심리학에서는 체스를 통해 인지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어요. 마치 유전학에서 초파리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체스보다 복잡한 바둑은 학문적 연구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 교수(카네기 멜로대)는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꾼 뒤 체스를 이용, ‘군(群) 이론’을 주창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즉 수십 수 진행된 체스판을 고수와 하수에게 잠시 보여주고 다시 복기해보라고 하면 고수는 정확하게 복기하는데 하수는 거의 복기하지 못한다는 것.

이것은 고수들이 어떤 패턴을 갖고 암기하는 데 비해, 하수는 체스 말을 하나하나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인지 능력 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최 교수가 이번 학기에 대학원생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 것은 바둑 지도 방법에 관한 연구. 보통 바둑을 가르칠 때 무조건 정석 맥점 사활 등을 외우라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하수들은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를 분석한 뒤 발상 자체를 바꿔주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연구의 주제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바둑과 치매, 바둑과 어린이의 두뇌발달, 바둑과 창의성, 바둑과 인공지능 등 바둑 관련 연구 분야에 대한 얘기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한 마디로 할 일이 많은 거죠.”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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