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 이야기]간접투자시장 ‘네탓 타령’

  • 입력 2001년 5월 1일 19시 08분


최근 미국에서는 얼마전 시작한 한 퀴즈 프로그램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고 있다.

NBC가 선보인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더 위키스트 링크(The Weakest Link)’.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가장 약한 유대관계’라고나 할까.

▼상호불신의 ‘퀴즈쇼’▼

이 퀴즈쇼가 주목을 받는 것은 잔인한 진행방식 덕택이다. 8명의 경쟁자가 출연해 각 단계별로 한 명씩 탈락시켜 나가면서 최종 승자를 가린다. 잔인하다고 하는 것은 탈락자를 사회자나 방송국측이 아니라 출연자들의 자체 투표로 결정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은 돌아가면서 퀴즈를 하나씩 푼다. 문제를 맞히면 전체 상금이 올라가고 틀리면 상금이 줄어든다. 자연히 문제를 가장 많이 틀린 사람이 공동의 상금을 까먹은 죄로 퇴출되기 마련이다.

탈락자가 결정되고 나면 사회자는 그를 지목한 출연자에게 왜 그를 지목했는지를 물어본다. 탈락자가 아직 무대에 있는데도 “학교 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의심스럽다”는 등 싸늘한 대답이 거리낌없이 나온다. 정말 잔인하지 않은가.

이 퀴즈쇼의 저변에 깔려있는 심리는 ‘불신’이다. 출연자들은 지혜를 모아 공동의 상금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누구를 떨어뜨려야 상금을 덜 까먹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요즘 한국의 뮤추얼펀드 시장을 보면 이 퀴즈쇼를 보는 듯하다.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 투자자는 펀드매니저의 운용 능력을 믿지 못하고 운용사측은 대박만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당연히 시장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10여개 자산운용사 가운데 뮤추얼펀드 수탁고가 100억원에도 못미치는 운용사가 대여섯군데에 이른다. 운용사들이 손익 분기점으로 잡고 있는 수탁고 3000억원을 넘는 운용사는 서너 곳에 불과하다.

현재 자산운용사들의 총수탁고는 구조조정 기금을 제외하면 2조원을 조금 넘는다. 뮤추얼펀드가 한창 인기좋았던 시절에는 수탁고가 6조원을 웃돌았다. 주식시장이 침체였던 이유도 있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를 탓하고 불신하는 사이에 ‘공동의 자산’이 슬금슬금 빠져나간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를 원망하기도 한다. 한 운용사 직원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시장을 너무 성급하게 키웠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만약 ‘더 위키스트 링크’에서처럼 공동의 자산을 까먹은 주범을 골라 퇴출을 시킨다면 누가 지목될까. 정부나 운용사, 심지어는 투자자도 퇴출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여의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고전하는 뮤추얼펀드▼

운용사들의 생존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간접투자 시장이 제대로 정착도 못하고 시들지는 않을까 우려를 하고 있다. 다행히 정부가 연구기관에 의뢰해 간접투자 시장 활성화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여의도 사람들은 무엇보다 참여자들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기대하고 있다. ‘더 위키스트 링크’인 현재의 분위기가 ‘더 스트롱이스트 링크(The Strongest Link)’로 바뀔 수 있는 대책을.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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