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전환사채 1兆 인수"... 현대전자,채권단에 공식요청

  • 입력 2001년 4월 22일 19시 29분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가 채권단에 1조원의 전환사채(CB) 인수를 정식 요청했다. 또 5월말 외자유치 전까지 필요한 브리지론(일시적 중개자금) 2000억원도 요청함에 따라 채권단의 자금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CB 인수는 사실상 출자전환에 해당돼 ‘외자유치를 통한 자력갱생’이라는 당초 목표와 달리 은행지원으로 회생의 길을 밟는 것이어서 ‘현대그룹 특혜시비’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22일 하이닉스가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상환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권에 1조원 규모의 CB 인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대전자는 이미 지난해 5월 이후 8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았으며 수출환어음 한도 설정과 만기연장 등 향후 지원액까지 합하면 지원규모가 모두 4조9098억원에 이른다.

외환은행 고위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주식예탁증서(DR) 등을 통해 해외에서 1조8000억원을 조달해도 이를 모두 회사채상환에 사용하면 외자유치의 의미가 없다”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2∼3년짜리 CB로 바꿔줘 일시에 몰려 있는 만기구조를 분산시킨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CB는 주식전환권을 주는 대신 금리가 회사채보다 크게 낮기 때문에 안정적인 이자수입을 중시하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현재 은행들은 출자전환으로 수많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지만 증시에서 매각해 제대로 회수한 주식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또 하이닉스의 이자비용과 영업이익을 감안할 때 CB 금리와 주식전환가격이 실제 신용도와는 달리 A등급기업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채권단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이밖에도 1조8000억원 외자유치를 내세워 신속인수 회사채와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 수출환어음(DA) 한도 등의 만기연장을 요구했다.

국제협상에 밝은 외국계 투자은행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정부와 채권단이 하이닉스의 부도 위험을 막기 위한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놓지 않으면 투자할 수 없다는 분위기”라며 “사모펀드의 속성상 앞으로 무엇을 더 요구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와 채권단은 뾰족한 회생방안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하이닉스의 외자유치에만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어 주도권을 빼앗긴 채 질질 끌려다니는 처지에 놓여 있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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