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인체기행

  • 입력 2001년 4월 20일 18시 47분


◇인체기행/권오길 지음/344쪽, 9000원/지성사

나는 권오길 교수를 개인적으로 만나 뵙지 못했다. 어찌 보면 전공도 비슷한 편인데 아직 뵙지 못한 데는 어린 내 죄가 크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제자들은 수없이 많이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생물을 배웠다는 이들로부터 선생님 밑에서 학위를 한 문하생들에 이르기까지 두 손으로 다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내가 생물학자라는 걸 알고는 모두 자기가 권오길 선생님에게서 배웠노라고 자기 소개를 다시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선생님이 안내하시는 ‘인체기행’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왜 그들이 한결같이 당신의 제자 됨을 내게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한 학기 동안만이라도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싶어졌다. 내가 대학에서 일반생물학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그 무식하게 뚱뚱한 원서 속에 흩어져 있는 온갖 잡다한 내용들이 이 얇은 한 권의 책 속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배움 중의 으뜸은 배우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온갖 기관들의 기능과 생리는 물론 암, 노화, 식생활과 질병에 이르기까지 결코 적지 않은 인간생물학 정보들이 선생님의 구수한 입담에 녹아 언제 입 속으로 흘러들어 장에 이르는지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소화돼 버린다.

눈, 코, 입에서 출발한 인체탐방은 이내 우리 몸 속 구석구석을 방문하며 궁금증을 풀어주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다. 여행을 마치고 배에서 내릴 때면 당신은 이미 어엿한 생물학자가 된다. 세상에 이런 관광이 어디 또 있으랴.

권 교수는 우리 나라에서 과학의 생활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생물의 죽살이(1995)’ ‘생물의 다살이(1996)’를 비롯해 선생님이 평생 연구해오신 동물인 달팽이가 제목에 섞여 있는 책들을 여러 권 펴내셨다.

내가 이번에 읽은 ‘인체기행’은 개정증보판으로, 원래 1994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약 2만5000부가 팔린 우리 과학계에서 보기 드문 스테디셀러이다.

“많은 학자들이 원숭이나 개미 등의 사회생물학적 특성을 쉽게 풀어쓰고 독자들은 그것을 재미있게 읽지만,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권 교수의 말씀에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힘센 나라는 과학이 발달했고, 능력 있는 개인은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과학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라는 그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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