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메디치 가 이야기

  • 입력 2001년 4월 20일 18시 43분


◇메디치 가 이야기/크리스토퍼 히버트 글/한은경 옮김/446쪽, 1만4000원/생각의나무

마키아벨리, 단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학창시절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공부할 때면 자동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름들이다.

이들은 이탈리아를 인문주의의 성지(聖地)로 만들어준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 멤버’들. 그러나 이들이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술과 가난의 질긴 연결고리를 끊어준 든든한 후원자 덕분이었다.

‘메디치 가 이야기’. 15세기부터 300여 년에 걸쳐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에 살았던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책이다. 제목만 보자면 한 가문의 일대기다. 그러나 메디치 가의 가족사는 이탈리아의 근대사가 되었고, 다시 세계사의 굵직한 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메디치 가의 역사가 르네상스의 태동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12세기 무렵부터 모직공업이 발달한 피렌체 공화국은 15세기 초 이탈리아 서안의 해안도시인 피사와 리보르노 지방을 매입해 무역항로를 확보하면서 막대한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당시 모직 작업장 두 곳을 소유하고 있던 메디치 가는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은행업에 진출하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 때부터 3세기에 걸친 권력과 문화의 행복한 동거가 시작된다.

메디치 가가 후원한 당시 예술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향유의 대상으로 거듭난다. ‘예술〓가난’의 등식은 파괴되고, 예술과 부의 밀월관계 속에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메디치 가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도서관을 세운 뒤 메디치 가 궁전을 드나드는 모든 인문주의자들에게 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재능있는 예술가에게는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천재로 ‘태어난’ 이들은 다시금 천재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의 묘미는 부와 권력, 그리고 예술의 관계를 절묘하게 서술한 작가의 솜씨에 있다. 메디치 가의 번영과 몰락을 단지 권력다툼의 정치적 논리로 풀어나가지 않고, 그 속에서 피어난 인문주의 예술을 적절히 연계시켰다. 메디치 가는 근본적으로 르네상스의 부침(浮沈)과 운명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갈등과 음모로 물든 이탈리아 근대 역사를 서사적으로 그려낸 한 편의 대하드라마이자, 르네상스 예술의 계보를 보여주는 ‘예술가 사전’이다.

영국의 역사저술가인 저자가 박식함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어 일반 독자들에겐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듯. 수많은 이탈리아어 고유명사에 익숙해지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없다. 그러나 지적 갈증에 목마른 독자라면 공부하는 자세로 도전해볼 만하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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