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중분석 애널리스트(下)]‘기업정보 공개법’ 도입을

  • 입력 2001년 4월 10일 19시 02분


작전이 붙은 종목, 큰 손이 손댄 종목, 핵심 정부부처 공무원이 사는 종목,….

한 증권사 영업직원이 꼽는 ‘VIP고객 대상 추천종목 우선순위’다. 은밀한 정보가 바탕에 깔린 종목들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글 싣는 순서▼
(상) 투자조언 "믿거나 말거나"
(중) "사라" 해놓고 자기는 처분
(하) '기업정보 공개법' 도입을

“주식투자의 승부처는 뭐니뭐니해도 정보”라는 게 그의 지론. 그는 “정보력이 뒤질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아무리 용을 써도 기관들을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지점에서 ‘족집게’라는 명성을 얻고있는 그는 애널리스트 탐방보고서 같은 공식적인 자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신 매주 두 번 정보회의에서 들은 얘기를 토대로 증시흐름을 짚고 고객들에게 종목을 추천해준다.

한 증권사에서 종목 추천을 맡고 있는 스트래티지스트도 “추천종목의 윤곽은 정보회의에서 잡힌다”고 말한다. 시장 분위기 점검→예상테마와 수혜종목 선정→해당 기업에 정보사항 확인→애널리스트 의견 참고→추천종목 결정의 순서로 작업이 진행된다. 그는 “애널리스트의 말만 믿고 종목을 추천했다가는 기관투자가만 이익을 보게 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각 증권사가 투자전략팀이나 투자정보팀을 만들어 애널리스트들과는 다른 통로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개인들에게 종목 추천을 해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것.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을 탐방하고 보고서를 쓰는 과정을 추적해보면 개인들은 똑같은 기업 정보를 기관보다 적게는 한나절, 길게는 2∼3일 늦게 얻게 된다.<그림 참조> 애널리스트들이 정보를 펀드매니저들에게 먼저 주는 것은 큰 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 그래야만 약정을 많이 따내 몸값이 올라간다.

한 애널리스트는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기업가치 분석보다는 펀드매니저에게 고급 정보를 빨리 물어다주는 세일즈에 신경을 더 쓴다”면서 “기업분석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적정주가나 추천의견이 자꾸 빗나가는 시장여건에서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애널리스트들은 “기업탐방을 하다보면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아서 공시는 내지 않았지만 이런 이런 것을 추진중’이라며 외자유치나 수주 건을 귀띔하는 CEO(최고경영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애널리스트가 펀드매니저들에게만 슬쩍 흘리고 입을 씻는 ‘고급정보’다.

증권사들이 커버하지 않는 60%가량의 국내 상장 및 등록법인들의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표 참조> 이런 종목들의 주가는 회사를 샅샅이 알고 있는 몇몇 대주주와 그들의 특수관계인들과 요행수를 바라고 덤비는 ‘묻지마 투자자’들간의 승패가 뻔한 대결로 결정되고 만다.

동원경제연구소 강성모 투자분석팀장은 “애널리스트가 단순정보를 선별적으로 중개해주는 일에서 벗어나 정보를 해석 가공해 기업가치를 전망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기업관련 정보를 모든 이해 당사자들에게 신속히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방안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작년 10월부터 시행중인 ‘공정한 정보공개 규정(Regulation Fair Disclosure)’ 같은 법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상장법인이 회사 정보를 애널리스트, 개인투자자, 펀드매니저들에게 같은 시간에 동시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규정이다. 또한 아직 최종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는 자진공시하도록 관련규정을 강화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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