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반핵평화단체 '퍼그워시' 로트블랫 명예회장

  •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36분


《세계적 반핵 평화단체인 퍼그워시의 설립자 겸 명예회장 조지프 로트블랫(93). 그의 90평생은 전세계 반핵 평화운동의 요약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트블랫 명예회장은 퍼그워시에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울에서 처음으로 퍼그워시 워크숍(3∼6일)을 개최한 데 이어 평양 방문길(7∼10일)에 나섰다. 로트블랫 명예회장을 6일 오후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퍼그워시가 지향하는 핵무기 없는 세계, 전쟁 없는 세계가 어떤 결실을 보았다고 평가하는가.

“40여년 전에 비해 지금은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전쟁의 위협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구소련의 몰락으로 전쟁의 위협이 사라졌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위협은 줄었지만 아직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핵 때문이다.”

그의 답변은 미국의 핵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핵개발 논리는 국가 안보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안보력을 가진 미국이 핵무기가 필요하다면 안보력이 훨씬 취약한 약소국들의 핵무기 개발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핵무기 폐기 운동에 앞장서야 할 미국이 핵개발을 주도하는 것이 핵확산의 주요 원인이다. 98년의 인도와 파키스탄간 핵개발 경쟁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은 근본적 원인이 결국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핵개발 불포기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본다. 초강대국의 핵개발 위협을 줄이기 위해서는 ‘선제 사용 포기 정책(Policy of No―first Use)’이 강화돼야 한다. 핵무기는 핵무기를 저지할 때만 사용하도록 약속하는 것이다. 이 정책이 국제조약으로 자리잡아야만 핵위협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로트블랫 명예회장은 “서방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는 것은 핵이 국제 무대에서 ‘높은 지위(High Status)’를 상징한다는 특권의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등은 이라크를 비롯한 불량국가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불량국가들이 핵개발 위협을 하는 등 신뢰받지 못할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데 왜 이들은 가질 수 없는가.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 중동 국가들은 ‘핵대칭(Nuclear Symmetry)’을 지향하는 성향이 강하다. 한 나라가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 다른 나라들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다.”

―어떤 계기로 올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워크숍을 개최하게 됐으며 어떤 성과를 거뒀는가.

“최근 동북아시아 정세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토론을 했다. 퍼그워시 회의는 해결책을 신속하게 찾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 교환에 주력하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때도 있고 성과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63년 퍼그워시가 주창한 핵실험금지가 96년에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으로 실현됐다.”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구상이 아시아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움직임이다. 미국은 북한 등 불량국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북한이 미국에 미사일 공격을 하면 미국은 훨씬 강력한 반격에 나설 것이 확실한데 북한이 자살행위를 하겠는가. NMD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과거 미국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아시아에서 최근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증대되고 있다. 미국이 대만에 무기판매를 확대하는 것도 중국 견제용이다. 만약 중국이 NMD에 맞서기 위해 핵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면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강대국들의 핵경쟁이 다시 불붙게 될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들도 함께 보호하는 방어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말하지만 미국이 부분적인 방어체제를 구축할 수는 있지만 완전한 핵우산을 제공하기는 힘들다. 우산은 구멍이 나기도 하고 찢어질 위험도 있다.”

―퍼그워시는 94년 미국과 북한의 미사일 위기 때 협상에 개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퍼그워시가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 도출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북―미 양국의 협상을 주선했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모색하지 못한 것이 퍼그워시가 부족했던 점이다. 그래서 이번에 북한을 방문한다. 북한의 (핵 관련) 과학자들을 만나 퍼그워시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지부 설립을 추진할 생각이다. 남북한 과학자들이 퍼그워시의 틀 안에서 정기모임을 갖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로트블랫 명예회장은 북한 방문 중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날 가능성에 대해 “평양에 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유보적 답변을 했으나 퍼그워시 한국지부 관계자들은 면담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자신이 속한 ‘노벨평화상 클럽 회원’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김 국방위원장을 만나기 때문에 한국측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퍼그워시에도 참여하고 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對北) 강경 정책은 한반도의 평화 가능성을 줄일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감소되면 얻는 이득이 많기 때문에 사태를 호전시키려고 노력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또 북한 경제개발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는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좋은 것 같다(웃음). 반핵운동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위해 헌신하면서 즐겁고 보람차게 인생을 살았다. 두 가지 인생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단기 목표는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몰아내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지구상에서 전쟁의 위협을 없애는 것이다.”

<정리〓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인터뷰=방형남 국제부장

▼조지프 로트블랫▼

△1908년 폴란드 출생

△39년 나치 억압 피해 영국 이주

△40∼45년 미국의 핵개발계획 ‘맨 해튼 프로젝트’ 참여

△50년 리버풀대 핵물리학 박사

△55년 버트런드 러셀, 알베르트 아 인슈타인 등과 ‘평화선언문’ 선포

△57년 ‘과학 및 세계문제에 관한 퍼 그워시 회의’ 공동 설립

△88∼97년 퍼그워시 회장

△92년 아인슈타인 평화상 수상

△95년 퍼그워시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 수상

△현재 퍼그워시 명예회장, 런던대 명예교수

▼퍼그워시 회의란▼

지구촌 반핵평화운동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퍼그워시(Pugwash) 회의’는 1957년 저명한 22명의 핵물리학자들이 캐나다의 퍼그워시라는 작은 어촌에 모여 핵무기 철폐에 관한 첫 회의를 열면서 시작됐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65개국에 지부가 있다. 61년 쿠바 미사일위기 때 미국과 소련 정책결정자들의 만남을 주선해 유명해졌고 화학무기금지조약,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95년 설립자 조지프 로트블랫 박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3000여명의 전문가들이 퍼그워시와 연계돼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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