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미셸 마페졸리/언론은 권력비판자

  • 입력 2001년 3월 30일 18시 43분


인류의 역사를 보면 ‘권력의 분립’은 조화로운 균형을 위한 최고의 보장 장치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정치 권력과 관련, 무엇보다 권력 사이에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지식인층의 다수 견해였다.

이런 일반적 관점에서 판단의 자유에 대한 확실한 보증인격인 언론은 정치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 오직 정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면 된다.

우리는 지도층의 변화에 대해 기뻐할 수 있고 이 변화가 질적인 것일 경우 이를 식별하고 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우리 모두가 개입된 싸움일 경우 ‘존재의 일반화된 합리화’라는 차가운 괴물에 대항하는 것이 된다. 자유를 지키는 것과 어떤 강요에 ‘노(No)’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중립이라는 씁쓸한 유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항세력 없으면 균형 무너져▼

오늘날 언론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을 결정짓기를 원한다. 이는 단지 권력과 거리를 유지하고 가까이 하지 않는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엘리트의 순환’처럼 일반인이 알 수 있는 범주내에서 일련의 테크노크라트와 정치인들이 책임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은 순리적이다. 이들에게 있어 정치적인 소속은 이름을 쌓아 가거나 자신들의 역량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매우 불리한 조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는 사회적인 힘을 잊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이때는 정치적 행위의 합법성을 가중시키는 모든 정당화에 맞서야 한다. 강제성이라는 이유에 근거를 두는 것은 항상 위험한 것이다.

막스 베버가 강조했던 구조적 모순이 ‘학자와 정치가’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두 부류가 하나가 되면 전체주의가 출현한다. 독재자의 조언자였던 철학자 플라톤에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주역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억압에 저항해 왔다.

언론은 이탈리아 사회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떠올렸던 ‘기병대와 의사의 가공할 만한 동맹’ 같은 집단의 주동이 되기보다는 권력의 현실화에 맞서는 잠재적인 비판적 존재로 남는 게 좋다. 또한 개인이나 사회를 결정하는 도덕주의자가 되기보다는 도덕적인 군중을 위한 외로운 수호자로 남는 것이 더 현명하다. 사회적 저항의 동반자인 언론은 정치 무대의 주역들이 결국 스스로와 게임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지라도 대중의 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다.

언론이 권력의 최고봉에 가까이 가면 작은 부스러기들은 긁어모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사회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언론의 사명을 배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중의 힘이 정치의 옹색한 규범들을 극복하고 다시 대중 스스로의 책임자가 되는 것을 언론이 방해할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가장 균형 잡힌 정치적 체제는 대항 세력을 갖고 있는 체제이다. 언론이 여론에 확고하게 뿌리박고 있다면 이 대항 세력이 될 수 있는 건 물론이다. 말하자면 언론은 여론의 합법적인 요구들을 표현하고 대신 나타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과 함께 있어야만 생존▼

이런 관점에서 언론은 사회적 힘과 정치 권력 사이에 있는 진정한 경계면일 수 있다. 사실 진정한 언론의 자유와 합법성은 이 경계면에 존재한다. 언론이 완강하게 지켜내야 할 자유와 합법성은 전부를 향한 것일 수도 있고 전부에 반대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때론 이 자유와 합법성이 언론 자체에 맞서는 것일 수도 있다. 언론은 정치 권력의 유혹에 굴복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복하지만 언론의 존재를 보장해 주는 것은 사회적 삶이다. 언론은 사회적 삶의 굴곡과 복잡한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은 대중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생존을 보장받는다. 대중의 보증이 있어야만 언론은 권력의 다양한 명령과 탄압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철학에서 ‘풀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은’ 진정한 삶을 정확하게 글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는 이것이 바로 현재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도덕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언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언론이 애착을 가져야 하는 점이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미셸 마페졸리(프랑스 파리5대학 사회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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