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화기부금은 허용돼야 한다

  • 입력 2001년 3월 28일 18시 33분


정부가 준조세 성격을 띠는 각종 기부금을 없애 나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많은 기업이나 국민이 자발성을 가장해 사실상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기부금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고 이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에까지 이같은 시장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국공립이건 사립이건 우리의 문화예술단체는 공연이나 전시를 할 때 순수한 입장 수입만으로 소요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이 때문에 기부금이 끊어지면 존립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행정자치부가 추진중인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 작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행자부가 마련해 입법 예고중인 이 개정안은 문화예술단체의 기부금품 모집을 금지하고 문예진흥기금의 용도 지정 기부와 지방 축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자발적 기부금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행자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나 일반인의 문화예술 지원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준조세 폐지를 요청해 온 재계는 ‘문화기부금’이 없어지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은 사실상 봉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부터 공연장 관람료에 부과해 온 문예진흥기금 모금이 중단되는 마당에 기부금 모금마저 할 수 없다면 이 땅의 문화예술은 설 자리가 없다. 특히 기부금 의존도가 높은 연극 음악 무용 전통예술 등 공연 예술은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 올해 ‘지역 문화의 해’를 계기로 도약 단계에 접어든 지역 향토축제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문화관광부가 행자부의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문화의 세기’라고 하지만 우리의 문화 현실이나 문화산업, 문화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접근 방식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아직 물을 주고 길러야 할 부분이 많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여유있게 하는 것이 문화다. 국가나 사회의 발전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반드시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같은 문화적 사안을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정부나 기업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낭비가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높여 결국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여 주는 일종의 투자라는 인식을 확립해야 한다. 문화를 죽이는 ‘문화기부금’ 폐지 방침은 재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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