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하얀전쟁>

  • 입력 2001년 3월 27일 19시 28분


<하얀 전쟁>

안정효 원작 (1991)

감독: 정지영

출연: 안성기, 이경형, 심혜진

이제 전쟁은 우리의 의식과 삶의 뒤편으로 물러서고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 정도를 전쟁으로 여기는 신세대에게 '진짜 전쟁'은 역사를 넘어 신화의 세계일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은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6.25전쟁과 월남전, 신생공화국 대한민국이 치른 두 건의 전쟁은 한국사회의 근본적 성격을 결정지었다. 안정효의 원작(1986)을 영상으로 옳긴 '하얀 전쟁'은 전쟁세대의 '인간과 역사에 대한 혼돈'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은 'White Badge'라는 제목으로 (1989) 미국에서 출간되어 성공을 거둔 최초의 한국인 소설이기도 하다.

전쟁을 뒤로하고 조국을 떠나 수십 년 째 유랑하고 있는 한 시인은 전쟁세대의 체험을 '풍경'과 '기억'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했다.

꽃담장 저편 사람 體制微笑 보여도/역사로서도 못 넘는 그 담장에/

燒印의 血痕 風化하였다.

( 방하식 記憶과 風景(2001) 중에서 )

'하얀 전쟁'은 망각의 세계에 묻어 버리기 전에 월남전의 의미를 찬찬하게 음미할 것을 제의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사회에서 이미 잊혀져 버린 한국전쟁을 예술사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서지문의 공들인 영문 저술, '잊혀진 전쟁 기억하기' Philip West & Suh Ji-moon, Remembering the "Forgotten War" (2001)의 논지를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백마부대, 모래밭, 뼈, 붕대, 흰 보라 다방, 한국인에게 흰색은 평화의 색깔이자 죽음의 색깔이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White Stallion)의 작가 안정효에게 백색은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하는 각성제이자 사회 전체가 송두리째 달리면서 흔들리는 한국인의 불안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환각제이기도 하다. "먼 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 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님 얼굴" - 유행가 가사처럼 멀고 낯선 '그린 파파야'의 나라에서 한국인의 백색공포가 재현된다.

"자유통일 위해서 나라를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따이한은 자유의 군대인가 아니면 경제용병인가? "관념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나는 전쟁은 두 개의 상반된 사상이나 이념이 양쪽에서 벌이는 성스러운 투쟁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인간욕망의 숭고하고 심오한 표현이며, 그 투쟁은 비극과 불행을 낳기는 해도 찬란한 승리와 이상의 실현을 위한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이란 남성적 힘의 성역이요, 죽음을 건 가혹한 싸움은 신격을 향한 발돋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전장은 이런 역사적 의미를 음미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전쟁포로를 인도적으로 대우할 것을 규정한 '제네바 협정' 또한 관념의 세계일 뿐이다. 1969년 4월 29일 대법원의 판결이 역사로 기록했듯이 절박한 전투의 현장은 언제나 양민학살의 위험을 안고 있다. (2000, 7. 14 동아일보 기사 참조)

전승탑 아래 사원 뜰을 걸으면

땀이 배어 끈적한 정글복 안으로

독경소리가 또 배인다.

x x x

여인이여 누굴 위하여 기도하시는가.

설움으로 들먹이는

어깨가 애처로왔다.

검은 아오자이 긴 머리 사이로

희디흰 그 얼굴 그리고 눈빛

얼른 우리들도 고개를 돌렸고

피던 담배 비벼 껐지만

웬일일까 끼치는 소름이

방탄조끼 땀 젖은 군복 안으로

파고들었다.

x x x

부대로 돌아오는 트럭 속에서도

돌아와 누운 침대 위에서도

땀 절은 군복 상의 가슴 쪽에

오래 묻어 있었다.

(김태수, 사원(寺院)에서 만난 월남여인)

영화는 마치 스크럼을 짜고 교문을 나서는 듯한 환각 속에 월남전에 참전한 지식인 청년의 독백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제시한다. 데모도 전쟁도 '집단최면현상'이라고 자조하는 그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심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작부의 눈에 비친 그는 "술잔을 뒤집어쓰고도 병신같이 웃기만 하는 소설가 아저씨"일 뿐이다. .

전 편을 통해 6.25에 대한 기억과 월남의 상황이 엇갈려 비친다. 한국전쟁 당시 교활한 '국'(gook) 소년이었던 자신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월남 소년, 그리고 총소리의 공포를 못 이겨 정신이상자가 된 전우, 두 망령을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은 표류를 거듭한다.

"박통도 갔다. 이제야 말로 월남사태를 파헤칠 때다." 시류를 타는 시사잡지의 편집장의 강권에 억지로 펜을 잡지만 회의의 연속이다. "내가 왜 월남전을 소설로 쓰겠다고 했나? 10년이 지나도록 나의 뇌리에 혼돈과 절망으로 남아 있는, 그 악몽과도 같은 체험을 냉정하게 소설로 엮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모두 꽁까이와 돈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작가 자신의 하얀 의식만은 침범 당하지 않았다.

마침내 군사 독재정권 아래서 쌓여가던 망막한 절망감이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찾는다. "소설 쓰는 데 보탬이 되라"고 전우가 보내준 총으로 그를 쏜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구분조차 못f한 채 전쟁의 망령에 체포된 그의 의식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이다. 마치 "유신의 심장을 향해" 쏘았다는 김재규의 총성처럼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의식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 처절한 의식을 통해 비로소 작가의 내면의 세계가 세상에 빛을 드러낼 계기가 마련된다. 전장을 듣던 "사이공 데뿔람" (아름다운 사이공)과 "서울의 찬가"가 결합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제 잔혹한 '두 도시의 이야기'를 역사로 정리할 때가 되었다.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월남전도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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