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보 실정, 백서 내라

  • 입력 2001년 3월 22일 18시 36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1일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책임을 물어 최선정(崔善政) 보건복지부장관을 경질했다. 다음주 국정쇄신을 위한 개각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장관을 황급히 경질한 것은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 의료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확산되는 것을 서둘러 막아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 파탄은 장관 한 사람의 경질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본다. 퇴임 최 장관이 잘못을 인정하며 말했듯이 의료보험은 수십년간 ‘저수가 저급여 저부담’이라는 ‘허구’의 구조였다. 지역 공무원 직장으로 갈려졌던 이런 허구의 구조들이 복지차원에서 하나로 무리하게 통합됨으로써 재정이 취약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의약분업을 준비 없이 강행했으니 재정이 무너진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신임 김원길(金元吉) 장관은 “일단 부도위기는 막아야 하기 때문에 우선 재정에서 지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신임 장관도 우선은 땜질처방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보험 재정은 급한 불 막기식으로 운영됐다. 재정 안정 대책이 없었다는 말이다.

어쨌든 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을 진두지휘한 차흥봉(車興奉) 최선정 전장관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은 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을 해도 국민의 추가부담은 없으리라고 잘못 판단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임질 사람이 두 사람뿐인가. 모든 화살이 복지부로 쏠리는 형국이다. 국무총리도 속았다고 하고 대통령도 속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책정당이라는 여당과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이 속을 때까지 뭐하고 있었는가.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감당키 어려운 정책을 무모하게 밀어붙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그런데도 정책결정과정의 책임소재 규명과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듯한 분위기가 정부 안팎에서 일고 있다. 의료수가 인상을 주장한 의료계 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분업 시행 전 연간 4조2000억원의 추가재정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선보완 후시행을 주장했다고 맞서고 있다.

의료정책 실정은 정부의 총체적 정책 기능 마비의 결과이다. 이러한 잘못된 정책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따지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정부는 의보 실정 백서를 발간해 두고두고 ‘실패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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