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승철/정주영과 기업가 정신

  • 입력 2001년 3월 22일 18시 30분


농사꾼 소년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살림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땅 파는 일에 매달렸다. 그의 초등학교 동창 여학생은 먼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소년은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보고 싶은 책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봄방학이 되면 그 책을 갖고 갈 테니 아무 날 역(驛)에 나오라는 답장이 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역에 나갔다. 그녀의 가족들이 마중 나와 기다리는 바람에 먼발치에서 숨어야 했다. 그녀는 아주 멋지고 성숙해졌다. 소년은 그 집 가족에게 들킬세라 흘끔거리며 뒷걸음질쳤다.

70년쯤 전인 193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소년은 정주영(鄭周永)이었다. 부잣집 딸인 그 여학생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지 못한 산골 소년의 가슴에 응어리가 어찌 맺히지 않았으랴. 이 콤플렉스는 두고두고 성공 동인(動因)으로 작용한다.

맨주먹으로 서울로 온 소년은 훗날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자란다. 그의 86년간 생애를 살펴보면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으로 달려왔음을 알 수 있다. 기업가정신이란 도전과 혁신을 실천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는 줄기차게 도전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더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이 정신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한적한 울산 바닷가에 거대한 자동차공장과 조선소를 지었고 바다를 메워 광활한 서산농장을 조성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일에서도 그의 파이팅 스피리트는 발휘됐다. 그리고 정치권력에도 도전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그는 빈손으로 출발해 당대에 거부(巨富)가 된 신화를 창조한 인물이다. “사업을 위해서라면 부패한 권력에 비위를 맞추는 일도 불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공과(功過)가 동시에 조명된다.

어쨌든 그는 20세기 한국사에서 가장 왕성한 기업(起業·企業) 활동을 한 인사다. 그는 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미국의 조지 길더 교수는 기업가정신에 대해 연구한 끝에 “기업인들은 그들의 시간과 부(富), 잠을 희생한다. 그들이 쏟아붓는 희생은 심해(深海)속으로 사라지는 헛수고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침내 산을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기업인의 역사적 경험이며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기적이다”고 갈파한 바 있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일생은 길더 교수의 이 발언과 맥(脈)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가 세운 현대의 일부 주력회사가 요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의 여러 계열사를 이끌어갈 그의 2세, 3세 경영인들이 과연 창업주만큼 기업가정신으로 무장되었는지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기도 하다.

창업주는 아날로그 창업주 세대의 마지막 거목이었다. 디지털 시대를 맞은 그의 후계자들은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젊은 기업인들은 정치권과의 검은 유착을 단호히 배격하고 ‘밀실’에서 벗어나 ‘투명경영’에 앞장서야 한다. 또 기업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을 존중하며 초우량기업으로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땅의 기업인들도 대다수 일반인들로부터 존경받는 대상이 될 것 아닌가.

현대의 후계자들은 만사(輓詞)를 올리면서 새 기업가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고승철<경제부장>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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