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수렁에 빠진 'DJ노믹스'

입력 2001-03-19 18:34수정 2009-09-21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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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 의 주인공은 11살난 소년 빌리 엘리어트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필자의 가슴에 아프게 남은 인물은 소년의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 아내를 잃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탄광노동자 재키의 현실은 암담하다. 대처정부는 구조조정의 걸림돌인 탄광노동조합을 '체제 내부의 적' 으로 몰아붙이고 노조는 이에 파업시위로 맞선다.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절망감과 미래의 불안이 탄광촌을 짓누르는 가운데 재키는 큰 아들과 함께 파업에 가담한다.

그러나 권투를 배우라고 한 막내 아들은 발레에 빠져들고, 춤을 추면 '자신마저 잊는다' 는 어린 아들의 열망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재키는 결국 아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파업대열에서 이탈한다. 노동자의 자존심으로 버텨오던 늙은 광부의 단단한 어깨는 분노와 슬픔으로 허물어지고, 뒤쫓아온 큰 아들에게 이렇게 절규한다.

"우리는 탄광촌에서 썩을지 모르지만 빌리는 달라. 그 아이에게는 기회가 있어. 빌리에게서 그 기회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구조조정 = 대량해고인가▼

이런 아버지가 어디 영화 속 뿐이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일상의 모습이 되지 않았던가. 실업자가 다시 100만명을 넘어서고 거리에는 가족노숙자까지 늘어나고 있다.어느덧 직장에서는 사십대 후반이나 오십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고, 전체 근로자 중 임시직 계약직 등 불안정한 고용의 비율이 50%를 넘어선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그런데도 아직 노동의 경직성이 문제라고 한다. 인력을 쉽게 정리할 수 없어 외국기업이 한국에 들어오기를 여전히 꺼려한다는 것이다. 정리해고제의 논리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바탕으로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으로, 그렇게 해서 경제를 살리면 일자리가 다시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DJ노믹스' 핵심정책의 하나인 노동시장의 유연화전략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한 직장에서 잘린 뒤 비슷한 직장으로 옮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직종을 바꿔 성공하는 예도 드물다. 이런 현실에서의 노동유연성이란 강제해고의 부드러운 표현으로밖에 인식되지 못한다. 물론 경제전문가들은 세계시장의 흐름상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세계화의 마당에서 경쟁력을 잃으면 나라든 기업이든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곧 대량해고'라는 식의 개혁방향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에 대한 반성은 이제 절실하다. 글로벌스탠다드도 좋지만 우리 여건과는 맞지 않는 미국식 모델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옳은지, 그러고도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실직은 단순히 사회안전망의 문제만은 아니다. 독립된 인격체인 개인과 그 가족의 좌절이자 정신적 공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의 유연화전략은 필연적으로 적대적인 노사관계를 초래하며 정책결정자인 권력에 대한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요즘 노동자들의 시위현장에서 'DJ 퇴진 구호' 가 터져나오는 것도 그렇게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 의 원성▼

정부는 지난 2월말까지 4대 부문 개혁의 기본틀은 갖춰졌다고 했다. 이제 경제는 '민주적 시장' 에 맡기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하면 잘 되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IMF(국제통화기금) 한국사무소장의 말을 빌어 개혁 평점이 90점은 된다고 자찬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자본기구 사무소장의 높은 평점이 실업자 100만 시대로 나타나서야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혁이냐는 '사회적 약자' 의 원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실업자 100만 돌파에 계절적 요인이 작용한 탓이 큰만큼 곧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와 구조조정이 반복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더구나 우리 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일본 경제가 최근 매우 나쁘게 돌아가고 있다.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경제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DJ노믹스' 가 수렁에 빠졌다고 한다면 듣는 쪽에서는 가혹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더욱 가혹하게 느낄 실업자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youngji@donga.com

<전진우기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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