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 땅을 떠나게 하는 '절망교육'

  • 입력 2001년 3월 5일 18시 37분


이민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나라 안팎의 교류가 많아지는 국제화시대를 맞아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민의 내용이 그 같은 현대적 삶의 추이가 아니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대부분 이 땅의 교육현실이나 정치 경제상황이 싫어 하나의 ‘탈출구’로 ‘나라를 등지고’ 이민을 선택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엄청난 사교육비부담 등 절망적인 교육 현실 때문에 이민을 떠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3,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이민―유학박람회에는 4만5000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민박람회 관계자는 상담자 10명 중 7, 8명이 “아이들 교육 때문에 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학부모 상당수는 허리가 휠 정도의 과외비를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외국이 아무려면 한국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초중고교생 한명의 한달 과외비가 수십만원은 보통이고 100만원을 넘는 사례도 많다. 아무리 쏟아 부어도 끝을 모르는 과외비 때문에 많은 가정들이 내집마련의 꿈까지 포기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공교육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에만 기대했다간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대학입시에서 실패하는 등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절박감이 학부모와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몰고 결국 교육이민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없어져야 교육이 제대로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 입시지옥, 하향평준화의 획일적인 교육,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사의 질, 교실붕괴, 학교폭력 등 날로 황폐해지는 교육현실은 학부모들에게 “우리 아이만은 이런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은 남고 나머지 가족만 나가거나 ‘나홀로’ 가는 조기유학도 늘고 있다. 기회만 되면 떠나겠다는 잠재적인 이민 구상자도 많아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심각한 현실을 국제화 운운하며 바라만 보지 말고 근원적인 치유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무너진 공교육체계를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학교교육의 내용과 질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 교육을 더 이상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 국민에게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아줘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기본이요, 행정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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