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기관들, 삼성전자 주총앞두고 '실리냐, 명분이냐'

  • 입력 2001년 3월 5일 16시 16분


'대의명분을 택하니 실리가 울고, 실리를 쫓으니 대의명분이 운다.'

삼성전자의 7일 정기주총을 앞두고 국내기관투자가들은 곤혹스런 선택을 강요받았다.

정기주총 주요 안건중 하나인 '주주제안에 의한 사내이사선임건'에 대해 찬반 의사표시를 요구받았다. 즉 참여연대가 사내이사로 추천한 전성철 변호사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의견을 밝혀야 했다.

이들의 고민은 삼성전자가 등기이사를 6명 줄이면서 발생했다.

올해부터 등기이사의 50%를 사외이사로 채워야 하는데 등기이사수가 줄어들면서 참여연대의 추천몫이 없어진 것이다.

대다수 펀드매니저들은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던터라 사외이사로 추천됐으면 쉽게 찬성표를 던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 변호사가 사내이사로 추천되면서 이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사내이사는 경영을 감독감시하는 사외이사와 그 역할은 천양지차라는 게 국내기관투자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결국 국내기관투자가들은 고심 끝에 전 변호사의 사내이사 선임은 '펀드가입자들의 이익에 도움이 안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5일 공시를 통해 대신투신운용과 플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그리고 국민은행 등에서 전변호사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플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의 한 펀드매니저는 "참여연대에서 삼성전자의 경영을 감시하는 것은 펀드가입자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하면서도 "한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회사 존립이 위협받는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전 변호사를 경영을 책임지는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는 시기상조다"고 밝혔다.

손동식 미래에셋투신운용 대표도 유사한 견해를 피력한다. 반도체기업을 경영해 보지 못한 전 변호사를 사내이사로 선출하는 것이 과연 펀드투자자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고심중이라고 밝혔다. 대다수 펀드매니저들이 부정적인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고 들려준다.

결국 대다수 기관투자가들은 참여연대의 '대의명분'은 동의하지만 '사내이사 선임'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로비가 적극적으로 전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펀드매니저는 "삼성투신운용의 동료 매니저로부터 협조전화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경영진들도 삼성전자에 우호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고 들려준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의 자금을 운용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협조요청'을 회사경영진이 무시하기 어렵다고 인정한다.

투신권의 또다른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가 참여연대의 사외이사 참여요구를 받아들일 정도로 경영투명성에 자신감을 보였으면 아무리 반도체 가격이 약세를 보여도 현재보다 더 높은 주가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영암 <동아닷컴 기자> pya84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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