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신용평가 위험한 평가방식 변경 추진

  • 입력 2001년 2월 28일 18시 53분


전망이 좋지 않은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할까?

신용평가가 후한 평가업체를 찾아야 한다. 등급간의 금리가 2%포인트 이상의 차가 나기 때문에 100억원의 채권발행시 한 등급만 올라도 금리부담이 2억원 줄기 때문이다. 나아가 투자부적격등급을 받으면 아예 발행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인지 현대전자 건설 석유화학 등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계열사들은 99년 중반 이후 ‘평가가 짜다’고 알려진 한신평의 평가를 기피하고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아왔던 제도가 복수평가제도. 은행신탁 투자신탁 등이 투자하는 무보증채권은 반드시 2개 이상의 신용평가사에서 평가받도록 한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정책 후퇴〓그러나 금감위는 최근 무보증채권의 신용평가를 1개사의 평가만 받아도 되는 단수(單數)평가제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금감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산규모에 따라 분기별로 건당 1000만∼3000만원씩의 과다한 평가 수수료 부담하고 있다”며 “단수평가가 실시되면 보수적인 평가 관행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계 생각은 다르다. 신용평가사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한국신용평가 김선대 상무는 “단수평가제가 되면 기업은 좋은 등급을 주는 평가기관을 찾게 되고 결국은 평가사가 기업의 비위를 맞추느라 경쟁적으로 등급을 올려줄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회계법인이 기업의 눈치를 본 것과 비슷한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더욱이 ‘단수평가로 보수적인 평가관행을 개선하겠다(평가등급을 올려보겠다)’는 정부측 발언은 ‘무지와 단견’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수준. 등급 인플레가 발생하면 국내 신용평가사 전체가 신용을 잃고 공멸하고 만다.

▽누구에게도 도움 안 되는 발상〓한국증권업협회 이정수 채권부장은 “신용평가는 기본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투자자의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복수평가 신용평가사간의 견제효과를 통해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신탁 성금성 이사는 “지금까지 2개의 평가등급 중 낮은 쪽에 무게를 두는 보수적 투자를 해왔는데 1개로 줄어들면 투자리스크는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으로서도 단수평가제가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평가의 신뢰도가 무너지면 무담보 채권 발행 자체가 어려워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의 고충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단수평가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셈.

선진 외국의 경우에는 정부가 나서 평가 횟수를 제한하는 일은 드물며 통상 투자자의 판단에 맡긴다. 그러나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피치IBCA 등 3대 신용평가사의 평가는 투자자에게 절대적 신뢰를 준다.정부가 굳이 나서려면 국내 평가사들이 이들 수준의 공신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내용이 돼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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