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엽의 이미지로 보는 세상]정적인 균형의 동적 긴장

  • 입력 2001년 2월 27일 18시 47분


현대의 대표적 예술 심리학자인 루돌프 아른하임은 자신의 저작인 ‘예술과 시지각’(1954년)에서 “가장 훌륭한 형태상의 균형은 형태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동적으로 작용과 반작용을 팽팽하게 거듭하면서 정적인 상태를 달성할 때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아른하임은 세잔느의 ‘노란 의자에 앉은 세잔느 부인’이라는 그림을 한 예로 들고 있다. 이 그림은 정적인 균형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정적인 균형의 내부에는 두 가지 요소들이 팽팽한 동적 긴장을 형성하고 있다.

아른하임이 지적하는 첫 번째 긴장은 직사각형과 원형이 만들어 내는 긴장이다. 이 그림의 전체 틀은 직사각형이다. 그리고 이 직사각형의 틀은 직사각형의 의자와 머리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그런데 어깨의 선과 앞으로 모은 팔은 원형의 형태를 이루어 내며 직사각형과 대립한다.

두 번째는 수직과 수평의 긴장이다. 이 그림의 전체 틀인 직사각형은 가로와 세로가 4:5의 비율을 이루는 수직적 직사각형이나, 그림의 배경에 놓여있는 두 개의 직사각형은 가로와 세로가 2:1과 3:2의 비율을 이루는 수평적 직사각형들이다.

세 번째는 왼쪽과 오른쪽의 긴장이다. 이 그림은 의자와 인물의 기울기로 인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의자가 왼쪽에 놓임으로 인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느낌으로 대체된다. 이 느낌은 인물이 의자의 오른편에 앉아 있음으로 인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느낌으로 다시 바뀐다. 그러나 인물의 양팔 중 왼팔이 강조됨으로 인해 움직임은 또다시 왼편으로 향한다.

이외에도, 앞으로 뻗은 팔과 그 뻗음을 막는 모아진 손, 정지된 머리 형태와 역동적인 시선,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머리와 그 솟아오름을 돌연히 가로막는 그림의 틀 등도 긴장을 자아내는 요소로 지적될 수 있다.

세잔느는 이들 대립되는 힘들을 정교한 작업을 통해 균등하게 포용함으로서 정적인 균형을 이루어 내었다. 이런 균형은 줄다리기에서의 균형과 흡사하다. 줄다리기가 균형을 이루었을 때, 비록 줄은 정지되어 있는 상태일지라도 그 내부로는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양편의 팽팽한 역동적 힘이 가득 차 있다. 마찬가지로, 세잔느 그림의 정적 균형 속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맞부딪치는 동적인 힘이 숨쉬며, 그러한 정중동으로 인해 명작으로 우뚝 선다.

강한 힘은 반대되는 다른 힘을 억누름으로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립되는 힘들을 포용하는 균형 감각의 유지가 스스로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배가시키는 일이라는 점을 세잔느의 그림은 우리에게 거듭 확인시켜 준다.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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