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윤치호 일기·1916~1943

  • 입력 2001년 2월 16일 18시 46분


◇'윤치호' 그는 왜 친일파가 됐나/윤치호 지음, 김상태 편역/686쪽, 2만5000원/역사비평사

일제시대말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윤치호(1865∼1945). 그는 일본 미국 중국에 유학했던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다. 독립협회장 대한자강회장을 맡았던 개화자강운동의 기수이기도 했다. 또한 105인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돼 6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3·1운동이 시작되자 ‘독립운동 무용론’을 펼치고 중일전쟁 이후 친일파의 대부로 변해갔다.

그는 왜 친일파가 되었을까? 그의 행로를 추적하는 것은 한국 근대사 연구와 그대로 직결된다. 친일파 여부를 떠나 그가 식민지시대 지식과 명망, 재력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한 궁금증의 실마리가 윤치호의 일기에 숨어 있다. 그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그것도 영어로.

이 책은 1916년부터 1943년까지 윤치호의 영문일기를 번역해 시대와 주제별로 소개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윤치호의 개인적인 일상은 물론 공인으로서의 활동, 일제 식민통치와 국내외 정세에 대한 견해와 전망, 다양한 독립운동에 대한 생각, 조선의 역사와 민족성, 지인(知人)들의 사상 행적에 대한 그의 인식 등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비록 친일파의 일기라 할지라도 구한말 식민지시대를 연구하는데 소중한 사료다. 친일파의 일기여서 더욱 소중하다. 여기에 이 책의 의미가 있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윤치호 일기에 관심을 갖고 우리말로 꼼꼼하게 옮겨 근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힌 번역자의 노력도 돋보인다.

이 일기에 따르면, 윤치호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가 3·1운동 직전 파리강화회의 등에서 독립을 위한 외교운동을 해달라는 주변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열강들이 약소국 조선의 독립에 신경을 쓰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치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가 독립운동 무용론을 펼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당시 평안도 지방과 서울 경기 지방 사이에 지역 감정이 극심했다는 사실도 이 책에 나오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안창호씨가 지역감정의 소유자여서 기호인들의 노력으로 독립을 얻을 것 같으면 차라리 독립되지 않는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1920년8월30일)는 대목이 그 예다.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식민지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암울했던 한국근대사를 보는 눈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점, 이것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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