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구학서/기업윤리 없으면 '百藥'이 무효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29분


일본에서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어떤 선배가 골프모임에 초대했다. 일본에서 그랬듯 나는 골프장에 일찍 도착해 내 ‘그린피’를 계산하고 라운딩을 마쳤다. 당연히 식대도 나누어 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선배는 이런 모습을 보고는 난데없이 야단을 쳤다.

“내가 초대를 했는데 왜 당신이 그린피를 냈느냐.”

일본에서는 남의 그린피를 내주는 일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초대한 사람이 몽땅 부담한다. 물론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 돈으로 말이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부서회식이나 고급 룸살롱의 거래선 접대 등 기업의 과다한 경비는 물론이고 거액의 회사돈을 사주 마음대로 빼돌리고 유용하는 등 ‘기업의 윤리’를 지키려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불러온 것도, 금융기관에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수많은 기업이 퇴출되는 것도 근본 원인은 기업경영의 바탕에 기업윤리가 자리잡지 못한 데 기인한다고 본다. 국가적 위기와 함께 국민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던 IMF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라는 한국식 경영방식과 잘못된 기업관행, 방만한 차입경영이 가져온 결과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방만한 차입경영과 함께 분식결산 방법 등으로 기업의 부채와 부실을 장기간 숨기고 경영함으로써 기업들은 도산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기업들의 도산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모두 전가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굴지였던 모 그룹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해외 불법자금을 조성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공기업의 도산, 앞으로 계속될 금융 및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은 국민에게 더 많은 고통과 불안을 가져올 것으로 예견된다.

이 때문에 국민은 국내 기업들에 신뢰와 애정보다는 불신과 분노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모든 책임은 국내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과 건전하고 투명한 경영을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지 못한 데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장 뒤떨어진 것은 ‘기업윤리’와 ‘기업가의 윤리의식’이다. 기업윤리는 기업 내 부정부패를 일소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고객 협력회사 주주 종업원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데 기업 활동의 초점을 두는 것이다. 당장 이익이 나는 사업이라 해도 협력회사나 사회의 이익에 반하면 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업윤리이다.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초일류기업들과 미국 내 500대 기업 가운데 95% 정도가 기업윤리를 채택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90% 이상의 대학은 기업윤리 교과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다행히 신세계에 이어 국내 소매업계에서 기업윤리 제정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전경련을 중심으로 기업윤리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모두 우리 경제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2의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있다.

바로 지금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기업윤리의 기치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선언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조직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구학서(㈜신세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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