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김윤식-이인화 교수의 사제 대담, '문학의 의미'

  • 입력 2001년 2월 5일 18시 43분


◇"학문과 소설의 결합에서 새 가능성 발견"

평론가인 김윤식 교수(서울대

국문과)와 소설가인 이인화 교수

(이화여대 국문과).

두 사람의 대담은 참으로 이례적인 것이다. 정년을 한 학기 남긴 노장 평론가와

강단에 선지 얼마 되지 않은 소설가는 서울대 국문과 사제지간이란 연고를 뛰어넘어

애(愛)와 증(憎)이 얽힌 불편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이 교수가 대학원 박사과정을 시작했던 1989년 ‘김윤식론’을 발표해 스승의 비평세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과, 김 교수가 제자의 소설 작품을 그리 달갑게 평가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릴 것이다.

두 사람은 그동안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던 ‘근대문학’과 이 교수의 역사소설 등에 대한 대담을 2일 서울대 인문관 3층에서 세 시간 동안 가졌다.

김 교수는 시종일관 여유있는 모습이었고, 이 교수는 담임선생 앞에 불려간 초등학생처럼 두 손을 무릎에 모은 단정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사제의 연을 떠난 두 사람의 날선 논쟁은 자신의 논지를 고수하면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감싸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김〓먼저 이 교수가 날 비판했던 ‘근대문학론’에 대해 이야기하지. 난 20세기가 민족국가의 완성과 자본주의적 근대화 달성이라는 두 과제가 주어진 ‘근대’의 시대라고 생각했고, 이것과 연관된 것만이 진정한 근대문학이라고 믿고 있어. 그것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근대문학보다 더 훌륭하고 잘난 문학일 수는 있어도 근대문학은 아니라는 입장이지.

△이〓저는 선생님의 근대 개념이 사회운동의 관점이지 문학 자체의 관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보다 개인적이고, 심정적으로 더 절박한 근대의 과제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까. 고향에서 유리되어 익명의 도시에 내던져져 ‘나는 누구냐’라는 존재의 불안을 느낀 사람들에게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보해준 것이 근대문학이었다고 봅니다.

△김〓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된 국민국가, 근대 민족국가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야. 우리는 아직 분단체제에 머물러 있고 앞으로 제대로 된 국민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는 엄존하는 것이 아니냔 말이지.

△이〓하지만 근대 민족국가 만들기가 초등학생 과제도 아니고, 넌 어제 숙제를 안 해왔으니까 오늘과 어제 숙제까지 모아서 내일 제출해라는 식의 요구가 가능하겠습니까. 오늘날의 세계를 돌아보면 숙제 안해온 애들이 대부분인데요. 오늘은 오늘 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겁니다. 이미 인터넷 환경을 만들어낸 정보화시대에는 근대 민족국가의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그렇다면 이 선생은 신세대로서 분단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소. 나는 그것이 미완의 과제이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는데.

△이〓저는 그것이 미완의 과제가 아니라 시효가 끝난 과제라는 생각입니다. 통일을 하든, 안하든 이미 근대 민족국가 만들기의 과제는 아닙니다.

△김〓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는 시효가 다했고 의미가 없다,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자세다…. 그렇지만 적어도 20세기까지는 내 관점이 옳았다고 봐. 난 여전히 이광수나 임화나 염상섭이 해온 것이 근대문학이라고 생각하거든.

△이〓개인의 공간과 내면적인 자기 존재감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이 바로 근대문학이었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 임화, 염상섭이 아니라 이상, 박태원, 반근대로서의 김동리의 문학이 근대문학의 중심에 놓이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요.

△김〓어떻게 보면 우리는 둘 다 문학을 헤겔의 도식인 개인과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논하고 있어. 하지만 나의 역사감각은 공동체적인 관점으로 많이 가 있고, 이 선생은 개인에 표적을 두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따지고 있는 것이지. 20세기는 내 주장에 기울어져 있었지만 21세기는 이 선생의 주장으로 기울어져 가겠지.

△이〓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김〓이제는 구체적으로 소설론에 대해 말해보지. 나의 소설 개념에 큰 영향을 준 책은 30년 전에 봤던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었어. 희랍시대에 대응되는 문학양식이 서사시라면 근대에 대응되는 문학양식은 소설이라고 적고 있지. 그 책을 읽고 소설은 자본주의와 대응되는 것이라는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됐어.

△이〓그런 것이 제가 1989년 ‘김윤식론’에서 비판했던 ‘규범미학’ 아니겠습니까. 틀을 딱 짜가지고 이건 소설이고 저건 소설 아니다고 말해버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창작의 자유를 옭죄는 억압이 되는 것 아닐까요.

△김〓그래 맞아.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생각해? 난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하나의 기점으로 보아요.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고 신화적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고. 윤대녕 이후부터는 자네 말이 맞을 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까지는 내 말이 상당히 맞았다 생각하거든. 그 증거를 댈 수 있는 것이 일제시대부터 해방을 거쳐 윤대녕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문학의 주류는 뭐였는가. 분단문학, 민족문학이었어. 말하자면 황석영의 ‘객지’, 김원일의 ‘노을’, 최인훈의 ‘광장’,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창비계열의 여러 작품들이 우리 문학의 주류였고 소설의 중심부였어.

△이〓작품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김〓맞아. 관점의 차이인데 나는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으로 보는 거란 말이지. 오늘날은 분단문학도 아무 의미가 없잖아. 90년대부터는 이 선생 생각이 맞아. 그 전까지는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는 거 아냐. 이것이 근대문학이 이룩한 인간의 위엄에 어울리는 문학이었어. 하지만 인권의 존중과 인간성의 옹호가 제도적으로 이루어지자 이번엔 ‘인간은 벌레다’ 하고 나선 것이지. ‘인간은 연어다, 메뚜기다, 도요새떼다’하고 나서는 거야. 이렇게 되니 내가 주장해온 관점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가 없지. 그러니까 이제는 이 선생 세대가 새로운 이론을 전개해서 소설관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엘리트주의적 비평이 우리 문학에 끼친 해독은 무척 큽니다. 작품이 반영하는 사회적 주제에만 관심을 기울인 결과 실질적인 이야기성이 약화되었습니다. 우리 문학에 독자를 가져다주었던 주류의 소설은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김주영의 ‘객주’, 황석영의 ‘장길산’ 등과 같은 대하 장편소설의 유장한 이야기였습니다. 1970년대의 최인호는 산업사회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성을 발굴하려고 했지요. 그러나 엘리트주의적 관점에 서 있는 비평은 이를 소설이 아닌 이야기로 평가절하했고, 그 결과 남은 것이 결국 1990년대 이후의 아무 재미도, 감동도, 문제의식도 없는 맥빠진 소설들이었습니다.

△김〓난 개인적으로 역사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선생이 지금 몽골을 소재로 쓰는 소설이 ‘인문학적 상상력’, 즉 우리 소설가들의 생각이 덜 미친 역사 사회학적인 상상력을 발굴하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

△이〓제가 자주 몽골을 소재로 삼은 것은 거기에 오늘날 우리의 삶과 관련된 강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 써보고 싶습니다.

△김〓한국문학의 취약점을 강화시키려는 취지라는 말이군. 나는 학문과 소설의 결합이 ‘사람은 벌레다’에서 헤매는 우리 문단에 하나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앞으로 공부 안하고 소설은 못써. 공부한 글꾼들이 인문학적으로 문헌을 판독할 수 있는 능력이 이인화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과분한 치사십니다. 하하.

이인화(본명 유철균)

△1966년 대구생 △1989년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92년 장편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출간 △1993년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 출간 △1995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0년 제24회 이상문학상 수상(수상작 ‘시인의 별’)

김윤식

△1936년 경남 마산생 △1960년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1973년 ‘한국근대문예 비평사연구’(일지사) ‘한국문학사’(민음사) 출간 △1986년 ‘이광수와 그의 시대’(한길사) 출간 △2001년 8월 서울대 정년퇴임 예정

<정리〓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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