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승철/진념과 샤샤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49분


샤샤와 히딩크. 한국 축구판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물들이다. 유고에서 온 축구선수 샤샤는 내친 김에 한국으로 귀화해서 내년 월드컵경기 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뛰고 싶단다. 네덜란드 사람인 히딩크 감독은 은발을 휘날리며 한국대표팀 조련에 땀을 흘린다.

이들은 미지(未知)의 땅 한국을 찾아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이들처럼 머나먼 이국(異國)으로 떠나 뜻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보면 약간의 경외심(敬畏心)마저 느낄 수 있다. 목표에 도전하는 뜨거운 인간의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진취적인 기상은 예부터 이름났다. 근세사에서도 한민족은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바깥으로 진출했다. 수십만명이 살고 있는 일본은 물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북간도와 연해주 벌판 등에까지 한민족의 숨결이 미쳤다. 지난 몇십년 동안엔 미국 유학 및 이민 붐, 독일 광원 및 간호사 취업, 무역업자 해외진출 등으로 한국인의 탈(脫)한반도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태권도 사범, 개신교 선교사 등도 지구촌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입양아 수출 세계 1위국’이란 오명을 안고 입양아들도 미국 유럽에 나갔다. 유대인들이 조국을 떠나는 ‘디아스포라(Diaspora)’현상에 못지 않게 한국인들도 한반도를 떠났다. 외환위기가 좀 가라앉을 듯하자 당장 나타나는 현상이 해외여행 러시.

이렇듯 왕성한 진취성과는 다른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관료들이다.

세계경제는 점점 통합돼 가고 있다. 세계시장이 하나로 돼 가는 세계화(globalization) 속도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다. 뉴욕증시 장세가 한국 거래소 시세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대표 지명자가 한국의 산업은행과 현대전자 문제를 언급할 정도다. 한국경제 동향은 미국의 월스트리트에 시차 없이 전해진다. 월스트리트에서 매겨지는 한국경제에 대한 신용등급 때문에 연간 이자부담이 몇십억 달러가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런 때이니 만큼 경제정책을 이끌어가는 고위 당국자라면 한국경제의 실상을 국제무대에 제대로 알리는 데 신경을 써야 마땅하다.

진념(陳稔) 경제부총리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 서울 아니면 과천에서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고 있으리라. 한국경제를 살리려면 이런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호랑이굴’로 가야 할 것 아닌가. 뉴욕으로 가서 거물급 국제투자가들을 만나야 한다. 한국경제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워싱턴에 가서 새 정부의 재무장관을 만나야 한다. 그는 다보스포럼이라는 좋은 기회도 포기하지 않았는가.

이런 활동을 사대주의(事大主義)로 몰아치며 비판하는 축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부총리가 워싱턴의 ‘형님’에게 인사하러 가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며 흥분하는 전통적 민족주의자도 많을 것이다. 이제 그런 사대주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필요해 그들을 설득하러 간다고 하면 얼굴 뜨거울 일도 없다. 한국경제가 선진권에 접어들려면 고위당국자들의 사고(思考)와 행동반경이 국제무대로 넓혀져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대표선수가 월스트리트에서 멋진 슛을 터뜨리기를 기대해본다.

고승철<경제부장>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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