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눈의 두 얼굴

  • 입력 2001년 1월 27일 18시 47분


올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다. 어린이들은 그저 즐겁다.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한다. 눈을 먹기도 한다. 어른들에게도 누구나 그같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눈의 첫 이미지는 순결이다. 하얀 천사, 순백의 미, 깨끗함, 포근함….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같은 이미지는 사라지고 만다. 쌓인 눈은 빙판을 만들어 도시를 마비시키고 녹아 내리는 눈은 세상을 온통 지저분하게 만든다.

▷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지워 가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눈은 이제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공해의 산물이 됐다. 바로 산성눈이다. 이는 산업시설과 자동차들이 내뿜는 아황산가스 등이 공기 중에 부유하다 수증기와 응결돼 만들어진다. 중국에서 흘러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대기오염 물질도 원인이다. 산성눈은 산성비의 일종이지만 오염도는 오히려 빗물보다 높다. 겨울철에는 강우량이 적어 대기 중에 있는 오염 물질이 한꺼번에 눈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갓 내리기 시작한 눈에 오염 물질이 많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1∼13일 서울에 내린 눈을 대상으로 37곳에서 산성도수치(¤)를 조사한 결과 18곳이 산성눈이었다. 절반이 산성눈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산성눈이 이제 도시뿐만 아니라 제주도 울릉도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산성눈은 토양을 산성화시켜 수질을 오염시키고 식물의 성장을 방해한다. 자동차 교량 건축물 등에도 녹을 일으켜 부식시킨다. 산성눈을 맞으면 가려움증이나 탈모 촉진 등 피해가 있을 수 있다. 눈을 먹으면 흙탕물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고 보면 이제 어린이들의 눈장난도 마냥 두고 볼 수만 없게 됐다. 그들에게 눈속에서 뛰어다니지 말라는 얘기를 하기가 서글프다. 어린이들에게 눈 세상은 한편의 ‘겨울동화’인데 그 동화를 읽지 못하게 해야 하니 안타깝다. 눈축제니 눈꽃이니 눈길이니 하는 말들도 산성눈을 겹쳐 생각하면 낭만적인 느낌이 사라지고 만다. 공해는 그처럼 사람들의 ‘추억 만들기’마저 방해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 가고 있다. 대책은 없을까.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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