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엄마의 와우! 유럽체험]하노버서 악착같이 살아남기

  • 입력 2001년 1월 26일 09시 58분


미찌요는 수의사 남편과 함께 독일 하노버에서 살고 있는 일본 주부. 서툰 독어 덕분에 친구가 적어 적적하던 차에, 그녀와 금새 친해졌습니다. 매주 세 번 독어 클래스에서 만나면 이것저것 생활정보를 나누곤 했지요. 취보(Tchibo) 매장에 모직 슬리퍼가 나왔다, 슈퍼는 어디가 저렴하더라, 시청 구내식당이 오픈했다 등등... 그러던 어느 날 미찌요가 노란 책자 한 권을 빌려주었습니다. 남편 친구가 하노버 국제여성클럽 회원인데, 그곳에서 발간한 하노버 정보집을 선물했대요. 미찌요가 건네준 영어책자의 제목은 "하노버에서 악착같이 살아남기(Surviving and Thriving in Hannover)". 제목이 재미있어서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하노버의 먼지까지 털어낸 세심함, 꼼꼼함에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하노버에 도착해서 전입신고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요 전화번호 목록은 물론, 독일인의 사고방식, 관습, 금기사항, 학부모 수칙, 독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별 수강료와 장단점 비교, 독일생활에 도움이 되는 영어간행물 및 영어사이트 등이 상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 뿐인가요? 구역별 집 구하기, 부동산 거래 시 주의사항, 쓰레기 재활용법, 가전제품 렌탈 서비스, 학교 등록, 대중교통 이용법, 독일에서의 운전요령 및 카풀 안내, 쇼핑정보, 시장 볼 때 필요한 재료 이름, 좋은 소시지 고르는 법, 스포츠 시설, 가족 나들이 코스, 중국 시장 주소, 미장원 갈 때 아이 맡길 수 있는 베이비시터 정보 까지...

다음날부터 바로 하노버 탐험에 들어간 나우엄마. 덕분에 수월하게 영어서점도 찾아냈고, 어린이전용 도서관과 비디오 대여점 카드도 만들었습니다. 독일인들이 애용하는 유기농 시장 비오란트(Bioland)도 찾았어요. 이곳에서 만드는 빵은 설탕 대신 꿀을 사용하기 때문에, 독일인들도 10분씩 줄을 서서 사더군요. 미찌요는 이 책에서 제일 요긴했던 정보가, 영어 할 줄 아는 독일의사 리스트였대요. 수의사인 남편이 소가 아프면 귀신 같이 알면서, 아이들이 아프면 힘을 못쓴다나요?

총 170쪽에 달하는 책자 내용은 클럽회원들이 각각 분담해서 영어로 쓰고 있습니다. 물론 해마다 변동사항을 업데이트를 하구요. 독일은 한국처럼 변화가 많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상점도 그대로이고, 제도도 꾸준히 지속되는 편이라 가능한 작업이지요. 회원은 외국인과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독일인으로 구성됩니다. 외국인은 바로 가입이 되지만, 독일인은 회원 수를 제한하고 있어 1년 정도 기다려야 하구요. 회원 가입비는 약 10만원 정도. 6개월 미만 체류자는 절반만 지불합니다. 유럽 전역의 여성클럽과 연결되어 회원들이 다른 나라로 옮겨 갈 경우 정보 수집에 큰 도움을 주고 있어요.

매달 한번씩 학교 교회에서 간단한 티타임이 열리지만, 이 클럽의 꽃은 매주 열리는 다양한 소그룹 모임이에요. 나우엄마가 참가한 모임은 토들러스 그룹(Toddler's Group)으로 만 3세 이하의 아이와 엄마들이 어울리는 모임이었습니다. 회원의 집에서 돌아가며 모이지만, 각각 케이크를 준비해서 포트럭 형식으로 진행되니까 간편하지요. 무엇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나우엄마가 세계 각국 가정방문을 해보겠습니까? 생활방식과, 인테리어감각, 요리 센스 등을 엿볼 수 있는 황금의 기회인 셈이죠.

무엇보다 나우엄마를 뿌듯하게 했던 것은 이 하노버 국제여성클럽의 리더가 한국여성이었다는 점이었답니다. 회장인 숙희 쇼버 부인은 오스트리아 남자와 결혼해서 10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활달한 여성. 유창한 영어와 재치로 다국적 여성의 모임을 멋지게 운영하고 있더군요.

3개월 하노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베를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도 그녀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노버 국제 여성클럽에서 베를린 여성클럽으로 바로 연결, 베를린 정보책자인 "주머니 속의 베를린 (Berlin in your pocket)"를 미리 받아 볼 수 있었거든요. 나우 놀이방 섭외, 쇼핑센터, 아시아 식품점, 도서관, 독어학원 등의 온갖 정보를 미리 꿰고 베를린으로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노버 여성클럽 덕분이었습니다.

며칠전 한 금발 여성이 유모차를 밀고 서울의 전철로 들어서는 걸 봤습니다. 호주머니에 론리 플래닛 가이드 서울편이 꽂혀 있더군요. 아이를 키우며 낯선 도시에 살고 있나봅니다. 그녀를 보고 있으려니, 작년 이맘때 하노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지요.

생각 같아선 "서울에서 악착같이 살아남는 법" 같은 책자 하나 뚝딱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그녀가 제대로 된 지도 한 장만 가지고 있다면, 천가지 즐거움의 도시 서울의 매력을 영원히 간직 할 것이므로...

나우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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