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정치와 종교의 함수관계

  • 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59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여사는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세실리아. 그러나 주위에서는 불교 신자로 착각할 정도다. 그만큼 사찰을 자주 찾고 또 불교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두텁다. 요즘에도 한나라당 불교신도회 회원들과 함께 매달 한 차례씩 유명 사찰을 찾아가 철야 기도회를 갖고 있다. 조계종 정대(正大)총무원장의 이총재 비난 발언을 전해들은 한여사의 충격은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종교계는 정치인들에겐 ‘영원한 짝사랑’의 대상이다. 특히 대선 때가 되면 각 후보 진영은 종교계의 ‘표심(票心)’을 얻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특정 종교의 ‘기피 인물’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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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자인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나 가톨릭 신자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총재로서는 대통령 후보 시절 불교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

▼예화1-DJ 부산 사찰까지 공략▼

92년 대선 직전 경남 합천 해인사 법회에 당시 후보였던 YS, DJ, 그리고 국민당 정주영(鄭周永)후보가 밀려드는 인파를 피하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하며 ‘얼굴내밀기’ 경쟁을 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 김도언(金道彦)의원은 부산 근교의 천불사를 찾았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천불사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대찰(大刹)은 아니어서 설마 상대 후보측이 여기까지 ‘공략’하겠느냐며 안심하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느긋하게 법회에 참석했으나, 법회에는 이미 국민회의 추미애(秋美愛)의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추의원의 손에는 축사까지 들려 있었다. 추의원은 이미 전날 현지에 도착,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하는 주지스님을 설득해 축사 예약까지 해 놓은 것이었다. DJ가 추의원의 이런 노력을 두고 두고 극찬했음은 물론이다.

▼예화 2-이총재 "파계승탈' 등 마찰 잦아▼

이총재는 정대스님의 발언 외에도 유난히도 불교계와 얽힌 ‘사건’이 많았다.

97년 대선 때의 ‘파계승 탈’ 사건은 꽤 후유증이 컸다. 선거일을 불과 열흘 가량 앞둔 12월초 한나라당은 국민회의 김대중후보와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후보를 비난하기 위해 ‘거짓말, 속임수, 경선 불복…믿지 못할 사람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기겠습니까’라는 제목의 가정 발송용 소형 인쇄물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런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인쇄물에 민속탈을 그려 넣은 뒤 ‘파계승 탈’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13개 불교단체가 일제히 규탄에 나섰고, 며칠 뒤 경남 합천 해인사를 방문하려던 이후보가 ‘문전 박대’를 당하기까지 이어졌다.

이후보는 그 전에도 “일요일에 국가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안식일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불교계를 자극한 일이 있는 등 이래저래 꼬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화 3-YS 청와대 불상 이전 논란도▼

YS 취임 초인 93년 서해 페리호가 전복되고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하는 등 대형 사고가 잇따랐다. 그 즈음 호주의 한 신문이 “김영삼대통령은 이같은 재난이 청와대 경내의 불상을 이전한 탓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말 불상을 치웠느냐”는 논란이 시중에 뜨거웠고 불교계에서도 이 문제를 공식 거론할 조짐이 보이자 청와대는 불교방송 기자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불상이 제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종교계에 대한 정치인들의 ‘짝사랑’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패배한 민주당 앨 고어 후보도 96년 4월 로스앤젤레스 라이불교사원에서 열린 선거자금모금 오찬 행사에 참석했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까지 받은 적이 있다.

▼2002년 대선은? "종교계에 잘보여야…"▼

구 여권의 선거운동 책임자였던 K씨는 “종교계 공략은 실질적인 득표 효과를 어림하기가 쉽지 않으나, 대선 정국에선 자칫 종교계의 입살에 오르는 악재는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87년 대선 때와 같이 “YS가 집권하면 청와대에서 목탁소리가 사라지고 성경소리만 들릴 것”이라는 식의 흑색선전이 확산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2002년 대선은 어떨까. 과거 대선 때와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김창혁·윤영찬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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